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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주례 없는 혼인예식'에 대한 유감(遺憾)

이 수 부 (혼인문화 연구가)
기원전 약 2,300여 년 전 공빈(孔斌)이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에 의하면 우리 민족을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하였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 동방예의지국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옛 예학자들께서 이루어 놓은 4대 예절(관례, 혼례, 상례, 제례)은 우리 민족의 예의범절이 얼마나 철두철미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옛날에 4대 예절 중의 두 번째 예절인 혼인예식을 거행할 때는 예식을 집례하는 주례자가 반드시 있었다. 마을에서 학식과 덕망을 갖춘 분을 주례〔笏〕로 모셔서, 새로 출발하는 신랑신부에게 삶의 덕담을 들려주셨다. 

다만 현대에서 사용하는 ‘주례(主禮)’라는 용어가 옛날에는 ‘홀(忽)’ 또는 ‘홀자(笏者)’라 하였다. 
용어의 변화는 마치 ‘동무’가 ‘친구’로 변한 것처럼…
 
그래서 “오늘 잔치에 어느 분이 ‘홀(笏)’을 잡느냐?”, “오늘 혼례식에 ‘홀자(忽者)’가 누구이신가?”라고 질문을 하면서 주례자에 대한 높은 관심을 표현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신랑신부의 학교 스승을 모셔서 주례를 부탁하거나 지역의 정치인이나 높은 관직자를 주례로 의뢰한 경우도 있었다. 학창시절에 존경하는 은사(恩師)를 모셔서 주례로 부탁함이 바람직하지만 한동안 연락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주례를 부탁하기도 난감한 일이었다. 그리고 정치인이나 관직자는 법률 제정으로 이제 주례를 집례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사정과 사회적인 여건으로 자연스럽게 전문성을 요구하는 주례(主禮)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혼례식을 집례하는 ‘주례’는 학식과 덕망을 갖추고,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매우 중요한 직무임에도 불구하고, 예식장의 각박한 시간 설정과 상업성 그리고 신랑신부의 조급함으로 인하여, 주례 말씀은 “짧게∼ 짧게∼”를 요구하다 보니 주례 무용론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할 것은 ‘왜? 주례 없이 예식장을 이용하는가?’에 있다.
혼인이라 함은 두 남녀의 결합인 동시에 각각 다른 가문(家門)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이루는 과정이며, 그 예식장에는 양가의 어르신들이 대부분 오셔서 축하해 주는 장소로 엄숙하고, 거룩하고, 성스럽고, 고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다.
 
혼례식장은 엄숙하고 성스러운 장소이기에 학식과 덕망을 갖춘 주례자를 모셔서 새롭게 출발하는 신랑신부에게 덕담을 하는 것은 동·서양(일본, 중국, 미국, 영국, 모나코 등)을 막론하고 주례는 필수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최근에 ‘주례 없는 예식’이라는 이벤트 형식을 빌려 경망스럽고 퇴폐적인 놀이문화로 전락하는 행사는 ‘성스러운 예식’이 아니라 일종의 ‘파티’에 불과(不過)하다고 생각이 된다. 
 
물론 옛날에 잔칫날 국수 한 그릇 조차도 손님에게 대접할 능력이 되지 않아 ‘정화수(井華水)’ 한 그릇 차려놓고 부부의 예(禮)를 갖추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비싼 예식장을 빌려 하객을 초청해 두고서, 주례〔笏者〕 없는 행사는 ‘혼인예식’이라 할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의 혼인문화(婚姻文化)를 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여 우리 예절문화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려야 할 것이다. 
 저서 「婚姻의 歷史와 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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