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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날 이야기 ①

이돈희 본지 수석부사장 겸 수석논설위원


필자인 청파 이돈희 본지 수석부사장 겸 수석논설위원은 감정평가사로서 아버지날과 노인의 날을 비롯하여 한국노인문제연구소와 한국노인학회를 만들었고, 세계노인의 날 제안자로서 세계한인재단 어르신위원회 위원장이다.


현대사회연구소에서 공모한 ‘서기 2000년을 대비한 나의 미래설계’에서 ‘노인마을 만들기에 일생을 건다’라는 작품으로 2,853명의 응모자 가운데 대상을 받았으며, 대한민국 호국대상 국회상임위원장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돈희 본지 수석부사장 겸 수석논설위원은 전국의 노인대학, 사회기관과 단체에서 수많은 강의를 하고 있고, 신문과 잡지, 방송 등 각종 언론기관에 다수 출연했다.


저서로는 「효친경로사상의 부활을 위하여」, 「이 지구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 등이 있다.


<편집자 주>



(1) 노인의 날의 탄생


필자는 21살 청년이던 23년 전 1968년에, 이 나라와 한 가정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전국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젊은 세대들이 노인들께 사랑과 관심을 갖게 하고자 <노인의 날>을 만들었다. 그 후 노인의 날의 제정 취지를 3년 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정부에서 제정하게 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함이 <노인의 날 행사>를 직접 하는 것이었다. 솔선수범을 하면 호응을 받지 않겠느냐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노인의 날 행사>를 하려니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관할경찰서의 집회허가를 받아야 했고, 행사 시 필요한 각종 현수막 제작, 각계 인사와 노인들께 보낼 초청장의 문안작성과 인쇄, 행사에 참가하실 노인들께 드릴 선물, 장수상·효도상을 받을 분에 대한 상장 인쇄 및 상품 구입할 돈 등등.


24살 무명청년이 하는 일에 누구 하나 물질적인 도움 없이, 부모님에게 협조 구하고 살던 방 전세 놔서 받은 돈을 가지고 1971년 4월 8일 서울 신촌에 있는 신촌 로터리 예식장에서 대망의 <노인의 날 행사>를 하게 되었다. 사단법인 대한노인회(회장 김공평)가 후원기관이 되었고, 월간 마포계(사장 이만금)와 그 직원들이 여러 날 수고 끝에 갖게 된 행사이다.


아침 일찍부터 날씨가 흐려 노인들이 참석을 아니 하시면 어떻게 하나 마음을 무척 졸였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끝내 많은 비는 오지 않았고 450여 명이 참석하셨다.


흔히 있는 「경로잔치」가 아니라 경제력 없는 청년이 정말로 노인을 위한, 「노인의 날」 제정을 위한 노인의 날 행사임을 아신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에선 『내 생전에 오늘처럼 기쁜 날은 없었다.』며 환한 웃음을 지으시는가 하면 노인의 날 행사 순서에 있는 국악인들의 연주와 노래엔 무대로 올라가셔서 덩실덩실 춤을 추시기도 하셨다.


행사녹음 및 방송은 기독교 방송 프로듀서인 이영우 씨가 했고, 신문보도는 「주간시민」의 민병진 기자가 자기 신문에 했다.


필자는 그다음 해(1972년) 4월 8일에도 노인의 날 행사(제2회 노인의 날 행사)를 가지려고 일 년 내내 돈을 모았지만(돈이라야 아버지가 주시는 용돈과 가정교사로 조금씩 버는 것이 고작이었고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음) 턱없이 모자라 「주간중앙」에 「노인의 날 행사 취소 공고」를 내고 일 년간 모았던 돈을 기독교방송 「할머니 안녕하세요」 프로에 기탁을 했다. 적은 돈이라 노인의 날 행사는 다시 못할망정 1년간 애써 모은 돈을 노인들을 위해 쓰고 싶었기 때문에, 역시 노인들을 위해 수고하는 기독교 방송에 기탁한 것이다.


노인들을 위하여 1970년 5월 4일부터 20년 동안 일요일을 제외하고 「할머니 안녕하세요」 프로로 노인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던 기독교 방송의 애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많이 출연한 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프로에 감사드린다. 한편 그 프로가 없어짐에 서운한 마음 누구 못지않음을 말씀드린다. 노인들의 20년간 친구였던 그 프로가 없어진 사정은 잘 알 수 없지만, 4백만 노인들을 위해 효친경로 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다시 부활되기를 기도한다. 기독교 방송에 TV국이 생기면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노인을 위한 프로를 만들어 주실 것을 제언한다.


노인의 날 제정 주창자로서 노인의 날 제정을 위해 매년 못하면 5년 만에 한 번씩이라도 꼭하고 싶던 노인의 날 행사는, 그 후 직장을 가지고 부부가 뜻을 모아 맞벌이까지 하지만 벌어 모으는 돈에 비해 물가가 너무 올라 한 번도 더 못하고 19년이 흘렀다. 말을 바로 하자. 봉급생활자 내외가 부모님 모시고 가정을 꾸리면서 행사비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


지금도 간절한 소원과 희망은 주요 일간지·라디오·TV에 노인을 위한 각종 캠페인을 계속적으로 벌려 전 국민이 알게 한 후, 공감과 호응 속에 「노인의 날」이 하루빨리 제정되도록 하는 것이지만 개인의 힘엔 한도가 있고, 세상일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술술 되는 것이 아님을 어쩌랴.


(2) 노인의 한(恨) 누가 아는가


추석연휴가 지나갔다. 오래 전부터 설날과 추석의 공휴 또는 연휴를 줄기차게 제언해 왔던 필자로서 감회가 무척 깊다.


고향에 계신 노부모님이나 친지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찾아 뵙고자 하는 방안이 설날과 추석을 공휴 또는 연휴로 하는 것이었으므로 이를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필자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애썼고 노력했으리라.


지금은 필자가 노인의 날을 4월 27일로 하고 있지만, 노인의 날을 만든 1968년부터 1972년까지는 4월 8일을 노인의 날로 했었다. 왜 그랬을까?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할머니들 대부분은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은 좋아하지 않을 것 아닌가?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도 좋지만 늦가을은 조락의 계절이기도 하여 노인들은 고독하시다. 더구나 우리나라 노인은 6.25사변 때 아들이 전사하거나 가족과 생이별하거나 배우자를 사별한 분이 많으시기 때문에 어느 나라 노인들보다 더 외롭고, 걱정과 한이 많으시다. 이 한을 누가 아는가!


젊은 때와는 달리 육신과 마음 모두 말을 잘 안 듣는 노인들은 배우자·자녀·손자손녀가 있고 없고 간에 고독하시다. 노인들의 고독은, 문학하는 사람들이 문학적인 마음에서 재미 삼아 말하는 문학적인 고독이 아니라, 죽음과도 같은 절망적인 고독이기 때문에 가을도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년 4계절 중 여름?가을?겨울을 빼면 남는 계절은 봄이다.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그야말로 신록과 삼라만상이 소생하고, 희망이 솟는 계절은 봄이므로 노인분들께는 봄 이상의 계절이 없으실 것 같다. 봄은 양력으로 3월·4월·5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양력 3월은 봄이라 하나 완전한 봄이 아니고, 5월은 제일 좋은 봄이긴 하나 각종 행사가 너무 많아 피하고 보니 4월이 남았다.


4월은 1일부터 30일까지인데 8일로 한 것은, 필자가 노인의 날을 만들 당시엔 5월 8일이 어머니날이었고(이 어머니날이 1973년부터는 아버지날과 합쳐져 어버이날이 된 후 현재는 어버이날임), 필자가 선린상고 2학년에 학생이던 1963년에 각 가정에서 자녀들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아버지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버지날을 만들어 드리고자 1,252명을 조사하여 우리나라 역사이래 처음으로 만든 아버지날이 10월의 8일이므로, 노인의 날을 4월 8일로 하면 어머니날·아버지날·노인의 날 모두 8일이므로 기억하기 좋을 것 같아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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