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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사반세기 전 「民族正論」에 소개된 노인 문제에 관해 심도 있게 접근했던 글

'너도 머지않아 老人(노인) 된다'

너무도 허술한 1만 달러 시대 老人福祉(노인복지)



李 敦 熙(韓國老人學會長․老人의 날 制定 主唱者)




이돈희 본지 수석부사장 겸 수석논설위원(UN 평화대사/큰 바위 얼굴/아버지날·노인의 날·세계 어버이날 만든 이/감정평가사)은 1963년에 아버지날을 만든 데 이어 1968년에는 노인의 날 제정을 주창하였으며, 2016년에 UN 한국 대표부에 세계 어버이날 제정을 위한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돈희 수석부사장은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인 1978년 「同和그라프」라는 월간 화보집에 ‘당신도 늙어서 노인 된다 - 귀찮아 말고 보다 따뜻한 경로사상 아쉽다’라는 글을 통하여 이미 노인의 날 제정과 노인학과 개설을 제언했으며, 노인마을 건립 등 노인복지에 관한 정책적 제안을 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이돈희 수석부사장은 1997년 10월 우리나라에 노인의 날이 제정되기 2년 전인 1995년 10월에 한국정책연구회에서 발간한 「民族正論(민족정론)」에 ‘너도 머지않아 老人된다 - 너무도 허술한 1만 달러 시대 老人福祉’라는 글을 기고하여 노인의 날과 노인마을 건립 등을 다시 한번 주창하였다.


이 수석부사장이 「民族正論」에서 노인의 날 제정을 주창한 2년 후인 1997년 10월에 정부에서는 노인의 날을 제정했으며, 1978년에 노인학과가 우리나라 대학교에 설치되기를 소망했던 꿈 또한 37년이 지난 2015년 9월에 마침내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에 한국 최초의 노인학과가 창설됨으로써 마침내 이루어지게 되었다.

                                                                         <편집자 주>




설 자리 잃어가는 노인들


구미 선진국뿐만 아니라 동양권인 우리 대한민국도 노인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버스나 택시 정류장·지하철역 등에서 차를 기다리노라면 노인(할아버지·할머니)께서 바로 옆에 계신 데도 담배를 당당히 물고 차가 오면 휙 담배를 버리고는 차를 탄다.


자기도 10년이나 5년 후면 아기엄마가 될 여고생이나 여대생이 아기를 업거나 안고 있는 아기엄마(자기보다는 노인)가 차를 타도 자리 양보할 생각도 안 한다.


노인분들이나 아기엄마는 동작이 느리므로 자리에 앉기가 무척 어렵다. 이것이 배우는 고등학생이고 대학생이고, 신세대이고 X세대인가? 행동 빨라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이 무슨 벼슬이나 하고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다리를 꼬고 있거나 떡 버티고 앉아 있다.


어디 그뿐이랴. 가정에서고, 사회에서고, 직장에서고, 노인이 설 자리는 점점 비좁아 간다. ‘孝親敬老思想(효친경로사상)’이 부활되지 않는 한 한심한 세상이라 할 수밖에 없다.


30년 전부터 필자의 꿈은 노인마을(실버타운) 건립이다. 27년 전인 68년에 ‘노인의 날’을 만들고, 그 3년 후인 71년에 서울 신촌에서 ‘제1회 노인의 날 행사’를 했으며 그때부터 노인마을을 만들 생각을 했다. 왜 30년 전부터 그 당시에 누구도 생각지 않은 노인마을 건립을 꿈꾸었는가?


이 글의 주제가 ‘아버지날’이 아니므로 ‘아버지날’을 만든 자세한 동기는 생략하겠으나, 고등학교 2학년 때인 32년 전 63년에, 자녀 등을 위해 온갖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참아 가며 밤낮으로 수고하시는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께 거국적으로 감사드리고 예부터 내려오는 孝親思想(효친사상)을 부활시키고자 1천2백52명에게 앙케트 조사한 결과를 가지고 우리나라 처음으로 ‘아버지날’을 만들었다(정부에서는 필자가 1963년에 ‘아버지날’을 만든 지 만 10년만인 73년부터 5월 8일 ‘어머니날’을 ‘아버지날’의 의미를 합친 ‘어버이날’로 변경하였으며, 금년은 제23회 ‘어버이날’이었음. 필자가 ‘아버지날’을 만든 후 몇몇 곳에서 ‘아버지날’을 만들거나 행사를 갖기도 했으며, 어떤 구두회사에서는 미국의 ‘아버지날’(6월의 셋째 일요일)을 중심으로 아버지에 대한 감사를 도모하고 있으며, 91년부터는 ‘좋은 아버지의 날’도 생겼음).



‘노인의 날’ 제정


63년에 ‘아버지날’을 만들었던 필자가 5년 후 대학교 4학년 때인 68년에 왜 ‘노인의 날’을 만들었겠는가? 점점 사라지다 못해 바닷속 깊이 잠수해 버린, 아니 지구 밖으로 아예 탈출해 버린 敬老思想(경로사상)을 부활시키고자 함이었다.


敬老思想의 부활이 말은 쉬우나 나 개인의 힘만으로는 너무나 미약하겠지만, 저수지에 돌을 던지면 생겨나는 조그만 물결이라도 되고 싶어서였다. 돌도 던지지 않으면서 물결이 일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봄에 열심히 씨앗도 뿌리지 않고 가을에 풍년을 기원할 수 없듯이….


노인분들께서 들으시면 무척 서운하시겠지만 현대판 ‘山上垂訓(산상수훈)’ 하나를 공개하고자 한다. 즉, 요즘의 젊은 부부 대부분은 노골적으로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않아도 되면) 행복하다’란 말이 나올 정도로 자녀와 며느리․사위들이 부모·시부모·장인·장모 등 노인 모시기를 싫어한다. 과거에는 불효 소리 듣기를 죽기보다 싫어했지만 요즘은 ‘차라리 한 번 불효 소리 호되게 듣는 것이 낫지 노인 안 모시겠다’는 세상으로 변해 가고 있다.


요즘은 며느리가 시부모의 눈치를 보는 ‘시집살이’가 아니라 시부모가 며느리 눈치를 보는 ‘며느리 살이’ 세상이다. 자녀가 여럿 있는 데도 양로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노인들, 친(시)부모·장인·장모를 양로원으로 보내는 현실이다. 자식·며느리․사위 좋다는 게 무언가!


세상 아무리 변하기로서니 늙으신 부모와 자식 간에 이래서 되겠는가 싶어 각 가정·사회·각급 학교·언론기관․국가 모두 1년에 하루만이라도 더 우리의 부모이자 조부모이요, 사회의 선배이신 노인분들께 관심을 가지자고, 지금의 젊은이가 비록 현재 노인은 아니지만 노인의 입장이 되어 보고 노인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잘 이해하도록 힘써 주십사는 간절한 염원으로 68년에 ‘노인의 날’을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27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에선 정식으로 ‘노인의 날’을 제정하진 않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동안 노인에 대한 관심도 늘어 어떤 종교기관에선 10년 가까이 전부터 ‘노인의 날’을, 모 신문사에선 ‘할아버지․할머니의 날’을 갖고 있기도 하다.


특히 유엔총회에선 1990년에 ‘노인의 날’을 만들 것을 합의하고 1991년에 제1회 ‘국제 노인의 날’을 제정한 바도 있다. 우리나라도 1991년에 유엔 가입을 했으니 이를 기념할 겸 경로사상을 앙양시키기 위해서라도 ‘노인의 날’을 정부에서 제정하리라 보며(반드시 제정하여야 하며), 이왕이면 공휴일로 하여 실질적으로 노인분들을 위하는 날이 되길 바란다.


노인 문제는 흑백 인종 문제보다 심각하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노인 문제가 오죽이나 심각하면 유엔에서조차 ‘노인의 날’을 정하겠는가를 정부는 물론 유관단체 및 기관·각 가정 및 각급 학교·언론기관에서 심각히 숙고해 주길 촉구한다(‘국제 노인의 날’을 계기로 ‘노인의 날’을 시작한 노인단체도 있으나 활발치 못함).


솔직히 말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정치가를 비롯한 국회의원은 물론 한국의 뜻있는 그 많은 분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느라 동방예의지국이라면서도 그 많은 날들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인분들을 위한 ‘노인의 날’ 하나 만들어 드리지 못하는가이다.


아무리 인간 망종이라도 ‘노인의 날’이 있고, 평소 노인에 관심을 갖게 하고, 노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너도 언젠가는 노인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잘 교육시킨다면 자기가 모셔 무방할 노인을 양로원에 버리거나 이 아들 저 딸 찾아다니다가 자살하게 만들진 않으리라 생각된다.


필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김영삼 대통령 시대인 지금도 노인 문제를 포함한 老人學 硏究(노인학 연구)에 관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전임 대통령들도 비슷하긴 하지만 金 대통령도 노인 문제에 크게 신경을 못 쓰는 것 같다.


개혁에 모든 신경을 몰두함을 국민들도 모르는 바 아니나 전반기는 이미 지났으니 남은 임기 동안에라도 ‘노인의 날’을 꼭 제정해 주길 바라며, 그렇지 못할 경우 다음 대통령 선거 때는 노인건강·행복한 노후 등 노인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후보자를 대통령으로 뽑을 것을 감히 제언한다. 국민들은 거창한 공약보다도, 엄청난 개혁보다도 실생활의 안정과 가정의 조그만 행복을 더 원한다.


비근한 예로 필자 내외는 지난 5월 21일 오전 10시경에 차는 폐차하고 두 사람 다 직장에 출근도 못 하고 입원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주소·나이․이름․주민등록번호·집 전화번호 등 신원은 모두 파악하고 있는데도 손이 모자란다며 경찰이고 검찰이고 잡아 주질 않는다. 가해자가 자수를 하거나 불심검문 등에 걸리지 않는 한 피해자가 잡아야 된다는 것이다.


암으로 투병 중인 73세의 노부가 아들․며느리 각각 입원한 병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간호해야 하는 모습은 자식이 아니라도 보는 사람 모두가 안타깝기만 한데, 차선변경·추월·속도위반 등에는 딱지 잘 떼는 경찰이 있는 데도 사고 내고 도주한 가해자는 피해자가 잡아야 하는 한심한 치안이다.


도서관이나 학원 등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돌아오는 자녀들 마중 나간 학부모를 해치는 무섭고 불안하기 그지없는 세상이다.


버스 회수권 몇 장과 극빈자 가정에게 주는 양곡이나 밀가루, 고궁관람료 반액이나 무료가 노인복지의 전부가 아니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라고 대견해할 것이 아니라 한가정과 이 나라를 맡아 오신 노인분들께 합당한 대접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 오는 시점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노인마을 건립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세대적인 효도방식이 아니다. 한집에 같이 살면서 서로 얼굴 찡그리느니, 떨어져 살되 주말이나 휴가 때 찾아뵙고 편지나 전화로 자주 안부를 여쭙는 방법도 좋은 효도이다.


농사를 짓던 옛날과는 달리 현대는 거의가 직장생활을 하는 쪽으로 사는 방식이 바뀌었다. 맞벌이 가정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노부모님을 모시는 일이 현실적으로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불효자·며느리가 아니더라도 노환으로 누워 계신 노인들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직장의 정년을 연장하고, 노인의 재취업의 기회를 넓혀야 하며,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노인마을의 건립이 필요하다.


노인마을에는 노인전문병원·종교시설·도서관·농장·운동기구·산책로·노인대학 등 노인들이 살아가시기에 좋은 시설을 갖추고, 거동이나 대소변 보기가 힘든 노인들을 위해서 전문간호사와 봉사자들이 정성껏 보살피도록 한다. 농장에서는 노인 스스로가 가축이나 농작물을 운동 삼아 기르고,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노인들이 즐겁게 사실 수 있도록 한다. 스스로 심고 가꾼 공해 없는 농작물이나 과일을 따서 바지춤에 쓰윽 닦아 잡수신다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실 것인가!


노인들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자주 엄습하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찬송가나 독경 속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생을 마감하실 수 있게 해드려야 한다. 물론 도시일수록 땅값이 엄청나게 비싸고 공해도 심하니까 물 좋고 공기 맑은 농촌을 골라 건립하면 된다.


규모도 꼭 커야 할 필요는 없다. 수십만 평도 좋지만 작게는 2~3만 평 정도라도 가능하다. 건립비용이 많이 들지만 냉정하게 따져 보면 조달 불가능한 액수는 아니다. 전답·임야의 가격이 평당 평균 10만 원이라 하여도 2만 평일 경우 20억 원, 3만 평일 경우 30억 원이다.


개인 혼자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지만 십시일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노인마을 건립에 뜻이 있는 열 명, 백 명, 천 명, 만 명이 합심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물론 어떤 일은 의욕만 가진다고 되는 것이 아님도 잘 안다. 노인마을을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부동산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필자는 71년부터 대학원에서 부동산학을 전공했고, 74년에는 부동산감정평가사가 되었다.


현장을 답사하거나 감정평가하면서 노인마을로 적합한 후보지를 물색해 보기도 했으며 77년부터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는 한국토지개발공사의 근무도 부동산을 좀 더 알기 위한, 노인마을을 건립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에 의해 진행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노인마을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자면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개인이 조그만 집 한 채 장만하는 데도 몇천만 원, 몇억 원이 들어가는데 수많은 할아버지․할머니를 위한 노인마을은 개인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므로, 2천년대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노인복지정책 차원에서 뜻있는 개인, 기업, 사회, 국가 모두 힘을 모아야 하리라고 본다.


물론 4~5년 전부터 일부 기업과 정부, 뜻있는 인사들이 노인마을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결과는 나타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노인복지의 완성 차원에서 정부와 기업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또 한 가지 반드시 필요한 것은 孝親敬老思想의 부활을 위한 사회 각계각층의 노력이다. 孝親敬老思想이 매우 메말라 가는 시대에 이를 부활시키고자 미약한 힘이나마 기여하고 싶어 76년에는 한국노인학회를 만들었으며, ‘효친경로 수기’를 매년 모집한 것이 벌써 11회가 되었다.


이름과 재력 없는 사람이 변변한 상금이나 상품 없이, 스폰서 없이 모집한 관계로 응모자에게 많은 죄를 짓고 있으며 대단히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매스컴에서나 응모자들이 상금이 얼마냐고 물을 때엔 정말 진땀이 난다.


빠뜨릴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정년의 연장이다. 평균수명이 40세가 못 되던 시절에는 60 회갑이 대단한 축복이어서 회갑잔치로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가 아니라 남녀 공히 평균수명 70세를 훌쩍 넘어 버린 현실에서는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직장 분위기와 정년의 연장은 필수적이다.


직장과 소일거리를 떠난 노인도 우리나라 국민이기 때문에 소외되지 않도록 정년을 연장하고, 소일거리를 마련해 드려야 한다. 그래야 자식들이나 손자·손녀·친지․친구들에게도 떳떳하지 않겠는가! 노인에게도 삶의 보람을 갖게 해 드리는 것이 노인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하여야 할 의무가 아니겠는가.


인간의 수명은 자꾸 길어지는데, 능력 위주의 발탁인사 등 명분을 내세워 정년 연장보다는 젊은 시절부터 청춘을 바쳐 오랫동안 노력해 온, 경력 많은, 나이 많은 분들을 무능력자로 치부하고 물러나도록 음양으로 압력을 가하는 풍토의 제거는 우선 국가에서 먼저 실천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개인이나 기업도 따라올 테니까.


특수 능력자 등에 대한 발탁인사는 당사자 한두 사람에게는 영광이겠지만(살맛도 나겠지만), 나머지 구성원에게 미치는 士氣(사기)의 저하는 그의 몇백 배가 될 수 있음도 인사권자는 통찰하여야만 한다. 이 세상은 특수 능력 있는 몇 명의 천재보다는 보통 또는 보통 이하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갖는다. 오는 2천년대에는 통일도 되고 노인복지정책도 발전하리라고 믿기에…. 또한 머지않아 정부에서 ‘노인의 날’도 제정하고, 곳곳에 노인마을도 건립되리라 믿기에…. 대학교에는 노인학과도 생기고 각급 학교의 도덕이나 윤리교육에서는 바로 孝親敬老思想을 가르치게 될 것이기에….


노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 X세대 할 것 없이 태어나서 병이나 사고로 죽지 않는 한 오늘의 젊은이는 누구나 내일의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젊은이 모두가 인식하도록 하자. 「民族正論」 1995년 10월호 (통권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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