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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부부들의 삶

김 만 률 (부산노인대학협의회 공동회장)
노부부들 중에는 별일 아닌 것들을 두고 아옹다옹 다투며 살아간다고 한다. 거실에서 빨래 손질하는 아내에게 커피를 요청했으나 반응이 없자 재차 요구를 해도 아내는 눈만 멀뚱거린다. 그러니까 늙은 남편의 정확하지 않은 말투를 알아듣지 못하는 늙은 아내는 구시렁거린다. 그리고 아내의 한쪽 귀가 난청(難聽)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린 남편은 그저 그렇게 또 한순간을 넘긴다. 자식들과 형제들의 문제로 이따금씩 말다툼을 하지만 또 그렇게 넘기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 동년배(同年輩) 노부부들의 이야기다. 젊을 때처럼 애절한 사랑도 없단다. 수십 년을 살아온 그 정(情)으로 그렇게 살아간다고 한다. 
 
부부로 30여 년을 살아온 중년의 남편이 부인에게 우리 너무 오래 살았다며 헤어지자는 일방적인 통보를 한다. 부인 손목에 붙어있는 파스 냄새가 싫다는 것이 헤어지는 이유라는 모 TV의 드라마 대사의 일부이다. 30여 년을 부부로 살아온 삶이 어디 파스 냄새뿐이겠는가? 남남이 부부로 인연되어 자식 낳고 기르고 교육시키면서 살아온 세월 속에는 피와 땀과 눈물, 사랑과 보람, 오해와 미움, 실증 등 수 없는 삶의 과정이 엉켜 있지만 헤어지자는 속 깊은 사유는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부부만의 프라이버시일 것이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 동향에 따르면 결혼생활을 20년 이상 살아온 부부들의 ‘황혼(黃昏)이혼’이 4만 건이 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1년 동안 집에 머무는 집콕 시간이 많아지면서 젊은 층의 예상 이혼보다 황혼이혼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황혼이혼은 특히 양성(兩性)불평등의 가부장(家父長) 가족구조에서 살아온 노년 여성들이 나이 들어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구일 것이다. 또한 황혼이혼율이 급증하는 것은 뜨거운 가슴으로 함께 하는 부부의 정보다 타산적이고 물리적인 사고로 끝장내는 사랑이 다수일 것으로 짐작해본다. 그러나 이혼이 부부관계는 해소되지만 부모와 자녀관계는 그대로 남는다는 점에서 이혼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가 2019년 7월에 모 언론의 세상보기에 쓴 기사가 생각난다. ‘왜 이혼하지 않으셨나요’ 질문에 첫째는 자식들 때문에, 둘째는 배우자가 잘되는 꼴이 보기 싫어서라고 했다. 그리고 판단력이 부족해서 결혼하고 인내력이 없어서 이혼하고 기억력이 흐려져 재혼한다는 글이 쉽게 이혼하는 지금 사회에서 그럴듯하기도 하다. 전쟁터에 나갈 때는 한번 기도하고, 배를 타러 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러시아 속담도 곱씹어 보아야 할 것 같다.   
 
50여 년 함께 살아온 노부부들에게는 사랑도 미움도 질투도 젊은 날의 희미한 추억으로 아른거릴 뿐일 것이다. 노부부들의 일상생활은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과 자녀들이 무사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소망이다. 그리고 어쩌다가 걸려오는 손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안부전화의 여운(餘韻)은 며칠을 간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들이 같은 목적으로 시작한 대화가 서로가 공감과 이해를 못 하여도 눈치껏 살며 이해와 양보로 살아간다. 부부는 3할이 사랑이고 7할은 용서와 이해라고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랑표현을 잘하고, 쉽게 열 받고, 쉽게 식어 버리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냄비사랑’이라고도 한다. 부부가 사는 것이 힘들고 서로 용서 못 할 생활이 있더라도 참고 이해하며 은은(隱隱)하게 정으로 사는 것을 ‘가마솥사랑’이라고 한다. 살아온 세월이 아까워서 이혼하지 못하고, 자식들 때문에 그렇게 살고, 부모님과 가문(家門) 때문에 살아 온 노부부들의 삶이다. 
 
하루는 지루하지만 1주일, 한 달은 궁사(弓師)가 쏜 화살같이 참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무료한 하루를 유효(有效)하게 보내는 궁리(窮理)가 필요하다. 갈 곳 없고 할 일 없고 만날 사람이 없는 일상은 무료(無聊)한 삶이다. 무료한 일상이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내 적성에 맞는 거리를 찾아 나서자. 조금씩 스트레스도 받으며 살자. 구시렁거리는 영감과 할멈의 잔소리가 쉬고 있는 뇌를 일깨우는 고마움으로 여기며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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