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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격동의 시절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었다

[그때 그 시절]격동의 시절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가난한 나라가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발전했다.
해외원조를 받던 나라는 해외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터로 나갔으며, 독일·중동으로 떠나 돈을 벌어왔다. 사회는 민주주의를 완성해 나갔다.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이룩하지 못한 쾌거이자 자랑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세대가 이룩한 자랑스러운 역사다. 돌이켜보면 시간이 참 유수와 같다. 
 
그때 그 시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을까?
그때 그 시절을 찾아 떠나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 시절 우리의 가슴을 울리던 것들을 찾아 추억여행을 떠나보자.


[DRAMA] 수사반장(1971년∼1989년)

한국의 콜롬보들이 그리는 범죄해결 드라마 수사반장.
 문화방송에서 제작·방영한 범죄 수사 드라마로 최불암, 김상순, 남성훈, 조경환, 노경주로 이뤄진 5명의 시경수사과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관들이 최불암(박 반장)을 중심으로 실제 일어났던 실화(범죄)를 해결하는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로 수사의 방법이나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휴먼 스토리에 초점을 맞춘 인정 수사물이다. 단순한 수사물로서가 아닌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했던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녹여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범죄자에 연민을 부여하는 묘사는 이 드라마의 특징이다. 1971년 3월 6일 첫 방송을 시작해 1989년 10월 12일 막을 내리기까지 무려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명작 중의 명작이다.
 이 드라마는 1971년 3월 6일에 시작하여 1984년 10월 18일까지 방영한 이후 종영었지만 시청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다음 해인 1985년 5월 2일에 다시 편성되어 1989년 10월 12일까지 무려 880회에 걸쳐 방영되었다.
 특히 이 드라마는 최불암, 김상순, 남성훈, 조경환, 노경주 등의 장기출연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사반장을 매주 챙겨 볼 정도로 애청한 것으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최불암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최불암이 담배 피우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담배를 찾으니 극중 흡연 장면을 좀 줄여주었으면 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수사반장은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으로 크게 실추된 경찰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기 위함으로 기획된 드라마로 경찰의 현실감을 가미해 더욱 인기를 끌었으며, 경찰관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 결과 20년에 달하는 긴 기간 동안 많은 인기를 얻으며 장수드라마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1975년 제11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했고, 출연진들 전원이 명예 경찰관이 되기도 했다.
 
 * 자료참고=MBCDRAMA


[STAR] '전설은 계속된다' 가왕 조용필

가수의 왕이라는 별칭이 있는 가왕 조용필은 아직도 매년 전국콘서트를 진행할 정도로 전설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1950년 화성에서 태어난 조용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애드킨스와 파이브 핑거스를 결성하여 보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70년 그룹 김트리오 결성 후 `님이여'로 최우수가수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더욱 유명해진 것은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하고 나서다.
 이 노래는 조용필의 최고 히트곡으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은 곡이다. 하지만 같은 해 대마초 사건으로 가요계를 떠났다. 그 후 1980년 `창밖의 여자'를 발표해 또 한 번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음악이 수록된 조용필 정규 1집은 국내 최초로 100만 장이 팔린 단일음반 사상 첫 밀리언 셀러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인기에는 그의 가창력뿐만 아니라 천재적인 음악성도 한 몫했다.
 그는 락, 발라드, 트로트, 민요 등을 가릴 것 없이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음악을 선보였고, 이런 그의 음악성은 일명 `오빠부대'라는 폭발적인 팬덤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는 1980년부터 1986년까지 KBS·MBC 등 각 방송사의 가수왕상·최고인기가수상·최우수남자가수상 등 대중가요와 관련된 상을 휩쓰는 등 한국 가요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86년 말 가수왕에 오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뒤에는 거의 방송 활동을 하지 않고, 해외와 국내에서 라이브 공연에 주력하기도 했다.
 대표곡으로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1980), `친구여'(1983), `허공'(1985) 등 무수한 히트곡이 있고 자서전 `초혼의 노래'(1982), 수필집 `바람이 전하는 말'(1985)을 출간하였고, 미국 암펙스 골든릴상(1982), 일본 CBS소니레코드 골든디스크상(1984),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2003), 은관문화훈장(2013) 등을 수상했다. 
 최근 그는 새 음반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해 신곡 만들기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신보가 나오면 지난 2013년 19집 `헬로'(Hello) 이후 9년 만이다.


[ACCIDENT}] 아웅산 테러 사건
1983년 10월 9일 미얀마(구 버마·이아 버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북한이 저지른 폭탄테러 다.
 이 테러로 수행원 및 기자 17명이 사망했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에는 북한과 제3세계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때로 전두환 대통령은 서남아·대양주 6개국 공식순방 중 첫 번째 방문국인 버마를 방문중이었다. 당시 버마는 사회주의 노선을 걷던 국가로 이 방문을 통해 대한민국과 우호적인 국가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는 방문이었다. 정상회담 등을 마친 전두환 대통령은 방문 둘째 날인 10월 9일 미얀마의 독립운동가 아웅산의 묘소에서 참배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참배 전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수행원들이 행사 준비 및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차량 정체로 도착시간보다 늦게 도착했고, 도착 전 한 번 더 진행된 예행연습 때 북은 전두환 대통령이 도착한 것으로 오인 하여 폭탄을 터트렸다. 
 이 테러로 서준석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서상철 동력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심상우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이기욱 재무부차관, 이계철 주 버마대사, 하동선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강인희 농수산부차관, 김용한 과학기술처차관, 이재관 청와대 공보비서관,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한경희·정태진 경호원이 사망했고 이기백 합참의장, 최재욱 공보비서관, 최상덕 외무부 의전국장 윤국병 한국일보 기자, 송진혁 중앙일보 기자, 최규철 동아일보 기자, 김기성 연합통신 기자, 김기석 코리아헤럴드 기자, 최금영  연합통신 사진부장, 임삼택·김상영 문화공보부 직원, 김상태 경호원 등이 부상을 당했다.
 북한은 이 암살사건과 무관하다고 강조했지만 11월 22일 미얀마 검찰당국에 체포된 범인들이 죄상을 밝힘으로써 북한에서 전 대통령과 수행원들을 살해하기 위해 인민군 장교들로 구성된 암살단을 애국동건호에 탑승, 밀파했다는 사건전모가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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