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유학생 단체학우회 결성 110주년... 이 옥 선생 / 유원우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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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국가보훈처] |
◆ 이 옥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13년 안동 보문의숙(?文義塾)을 졸업하였으며, 1920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조도전(早稻田)대학 정치경제과에 입학하였다.
1919년 7월 상해로 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11월 조사원(調査員)으로 활동하였고 1920년 철혈단원(鐵血團員)으로 동지 규합을 위해 북경·봉천 방면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일본 동경에서 조선유학생학우회의 서무부장과 총무를 역임했으며, 1922년 동경조선노동동맹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1924년 3월 1일 조선인 단체인 학우회, 조선노동동맹회, 평문사(平文社) 등의 연합 주최 하에 열린 3·1운동 기념식에 참여하였다가 검거되었으며, 동년 4월 재동경 학우회 대표에 선임되어 서울에서 개최된 조선청년총동맹 창립대회에 출석하였다.
1927년 2월부터 1928년 12월까지 국내에서 신간회에 참여하여 조사부원·의안작성부원·대표회원 등으로 선임되었으며, 총무간사로 선임되어 전국적으로 빈발하게 전개되고 있던 각 학교 동맹휴학의 원인 조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7년 6월에는 사회사정연구회(社會事情硏究會)를 창설하여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유원우
경북 상주 사람이다.
1920년 대구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당시 일제에 항거하는 동맹휴학의 주동 혐의로 대구경찰서에서 3개월간 구금되었다가 퇴학을 당하였다.
1927년 일본의 조도전(早稻田)대학 정경학부 재학 중 신간회 동경지회의 초대 총무간사로서 동경에 유학 중인 조헌영(趙憲泳)·전진한(錢鎭漢) 등과 함께 반일 사상을 고취하고 지하조직을 통한 항일운동의 선봉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동경에 있는 조선인 유학생의 모임인 학우회의 대표로 피선되어 일본 전국에 신간회를 조직하다가 동경시경시청에 붙잡혀 3개월간 구금되었다가 보석 되었으나, 요시찰인물이 되어 일경의 미행 감시를 받았다.
1930년 조도전(早稻田)대학의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귀국하였으나 조선총독부 경찰국의 요시찰인물로서 행동의 제한을 받으며 항일투쟁을 하였다.
1935년 전진한·김한옥(金漢玉) 등과 함께 영남지구의 농민자금으로 우리나라 농민협동조합체의 효시인 상주군 함창협동조합(咸昌協同組合)을 창립하여 책임지배인인 이사로서 농민수탈기관인 금융조합 및 동양척식회사와 맞서 농민의 권익 보호와 농민계몽운동에 헌신하였다.
1938년 안동농민회의 주최로 농민계몽을 위한 강연을 하던 중 뇌출혈로 사망하여 군민장으로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방병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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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22-10-21 10:5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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