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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김상태·신태식·김동신 선생
정부에서는 1907년 일제의 고종황제 퇴위와 군대해산 등으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자 전국적인 의병항쟁으로 확대된 정미의병 115주년을 맞이하여 2022년 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의병활동으로 목숨 걸고 일제에 항거한 김상태, 김태식, 김동신 애국지사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분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고자 하였다.
[사진제공 : 국가보훈처]

▲김상태
 충북 영춘 남청 출신으로 1896년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당시 전국도창의대장이던 이강년과 형제지의를 맺어 그의 중군대장으로 활약 중 호좌사 유인석이 만주에서 3년 만에 귀국하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동지 정운경과 더불어 제천에서 기병하여 각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이강년 등과 함께 다시 제천, 단양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순흥, 봉화, 풍기, 영춘, 영월 등지에서 활약 중 1908년 이강년이 피체됨으로써 군사지휘권을 인계받아 소백산맥을 근거로 하여 일경 및 일헌과 교전하기 무려 50여 회에 달하였다.
 1909년 3월 단양군 내 순사 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 2명을 사살하자, 총독부는 그에게 상금 오백금(五百金)을 걸고 체포에 혈안이 되었다. 그 돈에 눈이 먼 종사 우중수(禹中守)가 그를 배신하여 1911년 5월 순흥의 남목리에서 피체되어 대구경찰서로 압송되었다. 3차에 걸친 신문 끝에 3년의 선고를 받자 그는 의분을 참지 못하여 순사의 칼을 빼어 치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이날부터 절식 13일인 7월 28일에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신태식
 경상북도 문경(聞慶) 출신이다.
 1902년 내부주사(內部主事) 통훈대부(通訓大夫)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1894년에 거의하여 밀정혐의가 있는 가은면(加恩面)의 김골패(金骨牌)와 상주(尙州)에 사는 강용이(姜龍伊) 등을 농암(籠岩) 장터에서 총살하였다.
 1907년 8월 3일 단양에서 의병 수백 명을 모집하여 도대장에 취임 울진, 평해, 영월, 산동, 제천, 원주, 홍천, 춘천, 철원 등지에서 활동하자 일경은 9월 1일 신태식의 본가 가옥을 불태웠다.
 1908년 홍천 전투에서 적탄에 맞았으며, 양주 산안 전투에서 왜장 장삼랑을 주살하였고, 12월 14일 영평(永平) 리동(裡洞)전투에서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적에게 사로잡혔다. 
 1909년 2월 16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나, 4월 20일 경성지방재판소 공소심에서 내란죄로 교수형을 언도받자 영평면민이 입비송덕한 사실을 들어 진정하여, 무기로 감형, 재차 진정하여 10년형으로 감형되어 1919년 1월 19일 경성감옥에서 10년 복역 후 출감하였다.
 1919년 3월 1일 3·1독립운동에 참가, 상해임시정부에서 경북의용단장에 임명하자 동지 70여 명으로 조선독립 후원의용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듬해 겨울 일본 경찰에 기밀이 탐지되었다. 이로 인해 1922년 12월 28일 대구감옥에 수감되어 1923년 12월 22일 대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언도받고 1924년 6월 5일 출감 후에도 계속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1932년 1월 15일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동신
 1906년 일제에 의해 군대해산 후 홍주에서 거병한 민종식의 의병장으로, 1908년 2월까지 장수 무주 순창 구례 회덕 남원 등지에서 전후 10차의 전투에서 때로는 의병 1,000명을 인솔 일본군과 전라, 경상도 일대에서 교전하여 적병 수십 명을 사살하고 군기 다수를 노획하는 전과를 거양한 후 체포되어 8월 15일 공주지법원에서 내란죄로 종신유형을 선고받고 다년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방병건 논설위원2022년 

[방병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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