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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의 독립운동가...`안현경·이원순' 선생

하와이 이민 120주년을 맞이하여 1903년 1월 하와이에 도착한 한인들은 사탕수수농장의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도 조국이 일제에 합병당하여 어려움을 겪자, 조국 독립을 위하여 독립운동자금을 기꺼이 후원하였다. 
이에 정부에서는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선 안현경, 이원순 두 분을 2023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나라 사랑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사진제공 : 국가보훈처

▲ 안현경
 서울 사람이다.
 1903년 한국에서 노동이민으로 하와이로 건너갔다. 1910년 7월 일제의 한국 강점이 현실화되자, 하와이 각 지방 대표자들과 함께 하와이 호놀룰루에 화합하여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와 연서로 일본왕에게 일제의 한국 강점을 강력히 반대하는 서한을 발송하였다.
 1917년과 1918년 2년에 걸쳐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 총회장으로 선임되었다. 1919년 11월 이승만을 따라 중국 상해로 가서 1920년 임시정부 상임위원회 군무위원 및 정무조사특별위원회 외정분과 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0년 9월 하와이로 돌아왔다.
 1921년 7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후원을 목적으로 이승만 등과 함께 동지회를 조직하였다. 1922년 대한인교민단 총무로 선임되었다. 1922년 「국민보(國民報)」의 주필을 담당하여 이승만의 정치노선 선전에 힘을 기울였다.
 1939년 중국의 한인독립운동단체인 광복진선과 민족전선이 하나로 통합되고 중·일 간의 전쟁이 고조되자, 이에 영향을 받은 북미 대한인국민회에서는 1940년 9월 미주와 하와이 각 단체 대표자들이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시국대책을 강구할 것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와 동지회에 제의하였다.
 1941년 4월 2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국 내 각 한인단체 대표들이 모여 해외한민족대회를 개최하자, 동지회 중앙부 대표로 참석한 그는 독립전선 통일문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봉대(奉戴) 문제, 대미외교기관의 설치 문제, 군사운동에 관한 문제, 미국 국방공작 후원 문제, 연합기관 설치 문제, 독립금 수봉 문제 등을 결의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이원순
 1914년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주 하와이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가입, 박용만 단장의 비서 겸 재무담당의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8년 박용만이 북경에서 암살된 뒤에는, 이승만 이 조직한 대한인동지회에 가입하여 외교활동 및 독립운동 자금 조달에 전념하였다. 한편으로는 태평양주보를 창간하여 그 주필로서 독립정신을 고취하였으며, 상해의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34년 4월 18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미제2행서(駐美第二行署)의 재무위원에 임명되어 하와이에서 인구세(人口稅), 애국의연금 등을 모금하여 임시정부를 뒷받침하였다. 1937년에 북경 노구교의 충돌로 중일전이 발생하였다.
 임시정부는 강소성 진강시로 이전하고, 대일전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하여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을 비롯하여 미주에 있는 대한독립단, 동지회, 국민회, 애국부인회, 단합회, 애국단 등을 연합하여 한국광복진선을 결성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승만과 함께 동지회 대표로 이에 참여하여 선전사업에 주력하였다.
 1941년 4월 6일에는 민족대단결, 독립전선 역량 집중, 광복대업 촉성 등을 목적으로 해외한족대회준비회가 결성되어, 그는 안현경·도진호와 함께 동지회중앙부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안원규·차신호 등과 호놀룰루에 자리 잡은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의사부(議事部) 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43년 8월 19일에는 임시정부 국무위원회에서 그를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으로 임명하여, 워싱턴에 주재하며 대미 외교활동과 독립금 모금을 계속하도록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다. 

[방병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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