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이후 휴전선 방어에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 새마을 운동과 고도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하여 20년 만에 세계 경제 강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에는 탁월한 영도력의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나라를 빼앗긴 36년의 암울했던 압박과 설움에서 겨우 해방의 기쁨을 채 맛보기도전에 3년간 전쟁을 치르며 정부와 국민들이 악전고투할 때, 1950년대 대한민국 경제권은 북한, 아프리카 가나, 필리핀보다도 가난한 세계 100등 빈민국으로 당시 국민소득이 한국 70달러, 북한 100달러, 필리핀 200달러 수준일 때, 농번기가 되면 식량이 부족해 굶어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도 뉴스에 보도가 안될 만큼 경제적으로 힘들던 시절에 살았다. 1960년 4.19 학생의거는 부패한 자유당 시절 부모님들의 헐벗고 굶주린 생활을 참다못한 학생들이 민주화 선봉에 앞장서 전국적으로 대단한 혁명이었지만, 부정부패는 날이 갈수록 심해 자유당 정권이 하루빨리 무너지길 바랄 때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 후 전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땀 흘려 이룩한 ‘한강의 기적’은 우연이 아님을 지금의 할아버지(80세) 정도의 연세 드신 어른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잠자던 국민들 의식부터 새마을 정신으로 일깨우며 잘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농촌 개량사업(새마을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 먹을 식량도 부족할 때지만 호시탐탐 노리는 적을 막기 위한 자주국방 때문에 70만 국군을 양성, 막대한 국방비를 감당해 적의 도발을 막고, 국가재건을 목표로 공장을 짓고 제철 강국을 꿈꾸며 고도산업화를 추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위해 3천만 불 수출을 목표로 산업역군들이 주야로 일한 결과 수출탑을 돌파하면서, 1년 후 1억 달러∼10억, 100억, 1,000억 달러 돌파와 함께 대한민국이 아시아 10여 개 국가를 제치고 8대 경제 강국이 된 것은 부지런한 국민성이 이룩한 쾌거로서 유엔의 67개 국가의 도움으로 3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잿더미가 된 나라를 20년 만에 세계 제일의 제철소, 자동차 생산국, 세계 제일 전자산업국, 세계 제일 선박 조선업을 이룩한 중공업 등 세계 첨단산업 위주로 바뀐 것도 세계 경제사에 하나의 기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등소평도 독일 유학 시절 자동차 생산현장에서 일하면서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한 엘리트로서 중국이 발전하려면 박정희를 모델로 경제발전을 무조건 따라 배워야 한다며, 포항제철과 삼성전자를 부러워했으며, 후진타오는 대학 시절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에 대해서 직접 공부한 사람이고 중국의 정치인들은 박정희 전기를 읽고 공부하였으며 젊은이들도 한국의 비약적 경제발전이 너무 궁금해 대학수업에 박정희 강좌를 요청해 배우고 있다는 소문도 사실이다.
이처럼 새마을 운동은 후진국들의 성공적 모델로 인식되어 이라크, 몽골, 아프리카 콩고 같은 나라들도 새마을 운동이 최고라고 따라 배우고 있고 선진국 유럽에서도 새마을 운동을 ‘벤치마킹’ 하고 있다. 왜! 하필 새마을 운동이냐고 물으면 그들은 말한다. ‘한국만큼 극적인 발전을 이룬 나라가 지구상에는 없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싱가포르의 아버지 리콴유 수상도 롤모델로 박정희 대통령을 손꼽으며 새마을 운동과 고도의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박정희 대통령께 질투심과 경쟁심을 느꼈다고 뉴스에도 보도되었다.
외국 서적에도 한국의 경제성장을 대단히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개발도상국 국가들에게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 최상의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왜! 일까? 자원이 없는 국가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까지 한 지도자의 리더십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차례 수립하며 경제산업화를 목표로 남의 돈이라도 빌려와 경제건설을 서둘러 보겠다고 외국에 경제원조를 요청하면 반대파들은 ‘차관 망국’이라 비난했고 서독에 광부와 간호원을 파견하고 월남에 국군을 파병한다 하여 ‘젊은이의 피를 판다’고 악담했을 때 1963∼1978년까지 서독에 광부와 간호원을 파견, 연간 5,000만 불의 외화를 벌어다 조국 근대산업화를 앞당기는 데 일조를 하였으며, 독일 함보른 현장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후 향토예비군을 창설할 때 국토방위를 ‘정치적 이용을 꾀한다’고 모함했으며 민족의 대동맥인 고속도로를 포장하는 현장에 ‘국토해체’라 비난하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야당 시절 반대하며 공사현장에 드러누워 자기를 밟고 지나가라고 결사반대를 한 해프닝도 있었지만, 그 당시 산업발전을 위한 경부 고속도로는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산업의 대동맥으로서 우리 기술로 토목, 건설공사를 많이 하면서 건설경험과 기술축적으로 중동 및 지구촌 곳곳에 빌딩과 고속도로 건설수주로 외화획득에 기여하면서 매년 고도성장을 30년 이상 지속하여 지금은 선진국들과 기술경쟁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출 강국으로 입지를 굳히며 경제 대국이 되지 않았는가? 만약 그때 야당의 반대에 못 이겨 이를 중단하거나 포기하였다면 대한민국의 성장은 후진국 수준으로 암울했을 수도 있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국익이 되는 일이라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일해 온 그를 독재자라 비난했던 박정희 대통령이야말로 나라와 국민을 살린 ‘산업 영웅’이라 말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민주화란 입에 발린 친북 종북세력들의 광란에 속아 대한민국은 오히려 병들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국민들 노력으로 저절로 이루어진 거로 착각하며 살고 있는 진보세력들의 역사 오보와 주장은 터무니없는 망상으로 6. 25 이전에 우리보다 잘살던 북한 주민들은 태만하고 게을러서 못사느냐? 중국 공산주의 모택동 시절에도 인민들은 죽지 못해 살았을 것이다.
이처럼 한 나라의 경제발전은 누가 리더로서 그 나라를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며 특히, 농업국에서 중공업 위주로 산업이 재편성된 과정에는 박정희 대통령 같은 탁월한 예지력에 의해 추진력과 리더십이 강한 ‘카리스마’를 겸비한 인물이 대한민국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부하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분들이 20년간 해온 업적은 무엇인가 반문한다. IMF 외환위기 때 나라를 살리려고 대기업, 대은행, 금융기관의 주식 60%가 외국투자의 손에 넘어가고 국가부채는 날로 눈덩이만큼 증가 되었다.
민주화 타령으로 국가채무만 늘려가면서 분명히 인정해야 할 업적과 공적도 부정하는 부도덕한 정치인이 더 이상 되지 말기를 국민들은 바란다. 사람의 가치관은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금까지 살면서 자라는 세대에게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룬 산업근대화 역사관이 있을 법한 얘기들은 한마디도 없이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정치인들에게 박정희 역사관은 왜 없는가를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