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헌(梅軒) 최 규 탁 [수필가/감비문화연구원장]
금년에 나는 칠순(七旬)이라는 나이 고개를 무난히 넘어가고 있다. 이 나이는 과거에는 고희(古稀) 또는 종심(從心)이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부르기도 할 만큼 중요시한 나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평균수명에도 못 미치는 나이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노인 대접을 받기도 힘든 나이다.
예전에는 생애주기를 4계절에 비유하여 4단계로 구분하는 것이 흔한 비유적 방법이었다. 즉, 아동기(봄), 청년기(여름), 성인기(가을), 노년기(겨울)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이 옛날 기준대로라면 70세 나이는 만추(晩秋)의 노을을 바라보는 처지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렇게 치부하고 싶지 않아서 새로운 동향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지난 세기에 발달심리학자 에릭슨(Erikson, 1902∼94)은 생애주기를 8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그러나 18세 이전의 성장기를 5구간으로 세분한 것을 하나로 묶으면, 역시 4단계로 줄일 수 있다. 즉, 성장기(18세 이전), 초기성인기(19∼39세), 중년기(40∼64세), 노년기(65세 이상)이다.
40세 전후를 기준으로 청년기와 장년기를 구분한 것이 특징이고,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는 것은 종래의 유엔(UN) 기준과 동일하다.
1989년에 영국의 사회철학자 피터 라스렛(Peter Laslett)은 평균수명이 점차 늘어나는 고령화 사회를 예상하여, 인생주기를 구체적 나이와 관계없이 개념적으로 구분하면서 노년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인생주기를 출생해서 교육을 마칠 때까지(대체로 25세경까지)를 제1기 인생이라 하였다.
제2기는 취업하고 독립하여 결혼한 다음, 가정과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서 퇴직할 때까지(대체로 60∼65세까지)를 말하는데, 지나고 보면 어느새 지나간 세월인지 까마득할 때도 있다.
‘제3기 인생’은 퇴직 후 건강하게 지내는 가장 중요한 시기로서 연령의 상한을 두지 않는다. 건강을 잘 유지해 온 사람에게는 80세나 90대까지도 제3기에 해당된다.
제4기 인생은 퇴직하여 건강하게 제3기를 지내다가, 건강이 나빠져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어렵게 되는 의존적 시기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개인차가 있지만, 지병으로 고생하며 사는 제4기 인생이 평균 10년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구분으로 보면 제3기와 제4기를 묶어 노년기라 할 수 있지만, 라스렛이 특별히 강조한 것이 바로 제3기 인생이다. 제3기 인생에서의 과업이 바로 ‘자기성취’(自己成就)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윌리엄 새들러는 제3기 인생의 과업을 ‘제2의 성장’으로 본다. 제2의 성장에서 중요한 것은 창의력을 활용하여 타성적 생활을 쇄신하면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제3기 인생의 정체성을 학보하고, 일과 삶의 조화와 타인에 대한 배려 등 6가지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금년 들어 유엔은 평균수명이 길어진 것을 반영하여 수명주기를 새롭게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0∼17세는 미성년자, 18∼65세(48년간)는 청년기이며, 66∼79세(14년간)은 중년, 80세 이상을 노년이라 하고, 100세 이상은 장수노인으로 분류하였다.
청년기가 48년으로 가장 길고, 중년기는 14년간으로 가장 짧다. 특히 80세가 되어야 노년으로 본다는 것이 주목할 일이며, 현재의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하는 것에 비하면 15년이 늘어난 셈이다.
이 새로운 분류기준에 따르면 두보(杜甫) 선생이 고희(古稀;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던 70세 나이는 중년(中年)의 초입을 이제 겨우 지났을 뿐이고, 노인이 되려면 아직 10년이나 남은 셈이다. 따라서 70대 10년이야말로 인생의 황금기(Golden Time)요, 최선을 다해 살아 볼 만한 기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제부터 더 다부진 각오와 비전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더욱 소중히 여기면서, ‘오늘 여기’를 중요시하는 자세로 충실하게 살아가야 하겠다. 또한, 제3기 인생론에서 강조하는 자아통합(自我統合)과 노년초월(老年超越)을 동시에 추구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2015)〈奎〉
*최성재 〈새로 시작하는 제3기 인생〉,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0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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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16-01-07 21:50: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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