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산골의 조용한 동네에 자상스러운 아버지는 딸을 지게에 태우고 흥겹게 부르는 아리랑의 노랫소리로 영화는 시작된다. 1943년 일제강점기 침략적 야망을 가진 천인공노할 일본군은 천진난만한 열네 살 정민이를 강제로 차에 태워 중국의 길림성 일본군 부대 한 막사에 차를 멈춘다.
이들은 어린 소녀들을 성적 노리개로 이용하고 병들어 아프면 구덩이에 던져 죽여 버리는 만행을 서슴없이 자행하고도 반성하지 않은 일본인들의 사과를 다시 촉구하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게 하는 고발적 영화이다.
이러한 역사적 참혹상을 조정래 감독이 2002년 광주 퇴촌 ‘나눔의 집’에서 강일출 할머니를 통하여 사실을 접하고 살아 계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의 아픔을 찾아 그들의 실상을 모으고 12억이 소요되는 제작비는 75,270명의 아름다운 손들이 십시일반 후원으로 영화는 제작되었다. 더욱이 출연한 손숙 등 많은 유명배우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참여함은 정말 국민적 영화로서 가치가 있고 진작 만들어야 할 영화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귀향에서 귀는 집에 돌아간다는 것이 아니고 귀신 귀(鬼)자로서 타향에서 죽은 소녀들의 영혼이 작품을 통해서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하여 기억해야 할 역사의 아픔을 바로 알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존엄한 인격 훼손과 명예 회복을 통하여 한(恨) 많은 아픔을 달래주어야 할 국민적 책무를 갖는 것이다.
이러한 위안부 문제가 한·일간의 첨예한 대립갈등을 유발하고 국가 간의 협력문제가 위안부 문제로 상호 비방하고 대립하여 왔지만 지난번 한·일간 협상 결과 일본의 사과와 대승적 차원에서 한국도 받아 드렸으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거센 항의와 일부 시민단체들의 거부로 미완결 상태에서 이어지고 있다.
나 자신도 귀환동포로 해방 후 한국에 돌아온 부모들의 말에서 그 시대의 실상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어 세월이 흐른 지금 정부의 해결을 반기는 입장이었는데 오늘 이 영화를 보고 역사성의 부족함을 새삼 인식하고 할머니들의 그 원한을 일본의 아베 총리가 직접 사과해야 함을 절실히 수긍하는 심정이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일본군의 만행은 보면 볼수록 치가 떨리고 어쩌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며, 함께 감상한 나이 든 세대뿐만 아니라 학생들까지도 눈물을 흘리는 관객을 볼 수 있어 그 시절 힘없는 자는 결국 힘 있는 자에게 노예 같은 삶을 피하지 못할 실상에서 국력이 왜 필요한지를 다시금 느끼게 하고 영국의 처칠 수상이 남긴 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명언이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최로 집회가 평화의 소녀상에 모여 1992년 이후 지난 2월 24일 현재 1,219회를 거듭하고 있다. 위안부로 끌려간 한국인은 20만 명으로 추정되고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등록받은 이후 나이가 많아 돌아가시고 지금 44명이 살아 계신다. 아직도 일본은 그들이 직접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가지 않았다고 국제사회에 홍보하며 그들의 추한 모습을 피해가고 있지만 언젠가 역사는 진리를 말하며 그들의 거짓은 밝혀질 것이다.
영화 속의 영희(손숙)가 “내 몸은 여기 왔어도 나는 여전히 거기 있다”고 외치는 소리에 그들의 아픔을 잊기에는 너무나 큰 상처로 남아 있고, 마지막 외치는 경상도 넋두리 “억수로 미안하다” 그 짧은 말 한마디는 지금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외치는 함성이 되어야 한다. 정말 짐승 같이 취급당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상을 모르는 주민센터 공무원이 말하길 “어떤 미친 사람이 그 수치를 알리려고 신고하겠는가?” 빈정대는 눈으로 토하는 영화 속의 대사를 지금 내가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 스스로 질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