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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젊은이들이 노인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랜 이야기이다.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그렇다면 권위는 무엇이고 존경은 무엇인가? 사전을 뒤적이며 그 뜻을 헤아려본다.
권위(權威)는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 또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존경(尊敬)은 ‘남의 인격·사상·행위 따위를 높여 공경함’을 말한다. 서로 다른 뜻인 것처럼 보이지만 공통점도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관계’이다. 뜻풀이를 보면 권위와 존경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혼자 인정받고 혼자 공경할 수 없다. 사회적 관계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인정을 받고 공경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노인의 권위가 되살아나고 젊은이로부터 공경을 받는 것은 젊은이로부터 인정을 받고 공경을 얻는 관계가 만들어져야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것은 ‘이해’이다. 이해는 ‘말이나 글의 뜻을 깨달아 아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의 말뜻을 잘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도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내가 하는 말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할 때가 있는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뜻을 알아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이해는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의 말을 깨닫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해는 소통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소통은 ‘생각하는 바가 서로 통하는 것’을 말한다. 이해에 그치기보다는 이해한 것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전달하고 또 그 뜻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나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생각을 함께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내 생각을 상대방이 몰라준다고 아쉬움을 토로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왜 내 생각을 몰라주는지 그 이유를 살피고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대방의 생각을 깨닫고 함께 할 때 소통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인과 젊은이의 관계는 늘 어려운 관계를 형성해 온 듯하다. 노인은 “내가 저 나이일 때는 말야!”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이 말은 젊은이를 이해하고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실패하였을 때 나온다. 노인과 젊은이의 관계를 가깝게 하기보다는 멀게 느껴지게 한다. 정치 견해, 사회 현상을 보는 견해가 각자 다른 입장에서 자신만의 견해를 강조하면 관계는 좁혀지지 않고 더욱 멀어져 간다. 이해와 소통은 보이지 않는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소통하여 간극을 좁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을 젊은이들에게 요구하기 어렵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조차 일정한 거리가 있는 정서를 지켜왔던 부자 관계는 다른 성인과의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결국, 노인이 먼저 해야 한다. 노인은 다른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을 삶 속에서 익혀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 노인이 4세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손녀와 카페에서 노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린 손녀는 자신이 알고 있으며 할 수 있는 말을 최대한 동원하여 노인에게 건넨다. 노인은 그런 손녀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그 뜻을 깨닫기 위해 귀를 쫑긋하고 들으려고 하였다. 또 자신이 이해한 것을 손녀의 입장에서 전달하려고 하였다. 한참 나이 차이가 있는 어린 손녀의 어눌한 말과 행동을 꾸짖기보다는 손녀와 같은 위치에서 이해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런 노인의 모습에 손녀 또한 어려워하지 않고 친밀감을 유지하며 노인의 말을 듣는다.
결국, 노인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노인이 먼저 젊은이들의 생각과 말을 그들의 입장에서 살피고 깨달으며 이해한 뒤 젊은이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잘 들어주고 거기에 맞는 말을 해주니 얼마나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연스럽게 노인의 생각과 말을 잘 들으려고 할 것이고 거기에 맞는 말을 해주려고 할 것이다. 권위가 살고 공경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