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면 고생이라 했던가. 특히 밤낮없이 폭염특보가 발령되는 여름에 휴가지는 파라다이스보다 불지옥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더 많다. 북적이는 휴가지 대신 도심 속에서 여유롭고 쾌적한 휴가를 즐기는 ‘스테이케이션’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스테이케이션은 ‘머물다(stay)’와 ‘휴가(vacation)’를 합성한 신조어로 멀리 나가지 않고 집이나 집 근방에서 보내는 휴가를 의미한다. 스테이케이션을 대표하는 휴가는 영화 관람이다.
이런 흐름 때문인지 여름에는 유달리 영화관에 볼만한 영화가 넘쳐난다. 올여름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극장에 발길을 끊었던 이들도 구미가 당길 만한 영화 여러 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은 제3세계 영화까지, 각자 다른 매력으로 무장한 영화가 관객을 기다린다.
올여름 제일 먼저 관객몰이에 나설 영화는 김지운 감독의 ‘인랑’이다. 일본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공각기동대’, ‘인랑’ 등 199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든 살아 있는 전설이다. 김지운 감독은 원작에 2029년 통일한국이라는 한국적 설정을 입혀 영화화했다. 세 집단의 암투라는 설정은 유지하고 ‘남북한 통일 준비 5개년’이라는 설정을 추가해 몰입감을 높였다.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등 내로라하는 인기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개봉 전부터 관객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영화에는 대규모 지하수로 세트장부터 광화문, 남산타워 세트장 등이 등장해 공간의 리얼리티도 살렸다.
인랑, 미션 임파서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부터 칸영화제 수상작까지
7월 25일에는 ‘인랑’과 함께 또 다른 블록버스터가 개봉한다.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의 대표작 ‘미션 임파서블’의 여섯 번째 시리즈인 폴아웃을 공개한다. ‘미션 임파서블’은 1996년 첫 시리즈를 개봉한 이후 2016년 로그네이션까지 다섯 편 영화로 국내 누적 관객 수 2130만 명을 기록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톰 크루즈, 헨리 카빌, 사이먼 페그 등 주연 배우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역대급 팬서비스를 보여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최고의 스파이기관 IMF의 최고요원 에단 헌트(톰 크루즈)와 그의 팀원들이 테러 조직의 핵무기 소지를 막기 위해 미션에 착수하는 내용을 다룬다. 최악의 테러 위기와 라이벌 출현, 팀이 선택한 일의 결과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미션을 수행하기 어려워진다. 톰 크루즈의 액션도 볼거리다. 작품마다 대역을 쓰지 않기로 유명한 톰 크루즈는 오토바이 추격신, 카체이싱, 스카이다이빙 등 위험한 액션을 소화해 관객에게 짜릿한 쾌감과 리얼리티를 선사한다.
제70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더 스퀘어’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더 스퀘어’는 현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클라에스 방)이 전시를 앞두고 겪는 기상천외한 일상을 담은 블랙코미디 영화.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3년 전 북유럽을 열광시킨 예술 프로젝트 ‘더 스퀘어’에서 영감을 받아 예술과 일상, 전시와 비전시, 영화와 현대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혁신적 아티스트로서 면모를 발휘한다. 유쾌하고 다이내믹한 스토리텔링부터 감각적인 영상, 인간의 본성과 예술, 미디어와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꼬집는 메시지를 담아내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맘마미아2
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어느 가족’도 우리나라 관객을 찾는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으로 따뜻한 감성이 풍기는 가족영화를 주로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존재를 좀 더 본질적으로 파고든다.
아름다운 해변과 흥겨운 음악이 어우러진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 시리즈가 10년 만에 속편을 내놓았다. 맘마미아는 스웨덴 보컬 그룹 ‘아바’의 곡에 살을 붙여 만든 뮤지컬 영화다. ‘맘마미아!2’는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엄마 도나(메릴 스트립)의 찬란했던 추억을 통해 홀로서기를 배워가는 과정을 담았다.
안방 1열에서 보는 감동 실화
재미와 감동으로 블록버스터 물리친 발리우드 영화 ‘당갈’
당갈은 힌두어로 레슬링이란 뜻이다. 인도에서 최초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여성 레슬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세 얼간이’로 인기를 얻은 아미르 칸이 딸을 레슬링 선수로 키워낸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한 4월 25일만 해도 개봉관은 극소수였다. 그러다 개봉한 지 10일 만인 5월 5일 43개 스크린에서 5월 9일에는 92개 스크린으로 상영관 수가 크게 늘었다. 당시 경쟁했던 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3’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상승세다. 영화가 호평을 받은 데는 성장 서사에 담긴 가족 간의 사랑,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경기, 인도 영화 특유의 유쾌함이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여성 인권이 열악한 인도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무언가를 성취해낸 이야기는 많은 여성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6·25전쟁 고아 이야기를 다룬 터키 영화 ‘아일라’
아일라는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참전한 터키 군인 슐레이만 비르빌레이 하사와 전쟁고아 아일라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전장에 핀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춰 생김새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부녀로 살며 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1950년 11월 슐레이만 하사는 평안남도 전투 현장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충격과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 아이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슐레이만은 둥글고 노란 아이의 얼굴을 보고 터키어로 달이라는 뜻인 ‘아일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전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둘은 떨어지지 않고 1년 반 동안 부녀처럼 정을 쌓는다. 그러던 1952년 슐레이만에게 귀국 명령이 떨어진다. 슐레이만은 아일라를 몰래 터키에 데려가려 했지만 금세 적발돼 둘은 생이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