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에 일어나 맨 먼저 아침 신문을 펼쳐보는 내 눈앞에 연평해전 13주년을 맞아 서해에 모인 윤영하함, 한상국함, 황도현함, 조천형함, 박동혁함, 서후원함이 함께 해상 기동훈련을 보여주는 늠름한 모습과 대면한다. ‘연평해전’ 영화 속에서 만난 윤영하, 한상국 등 27명의 357함정 우리 해군 장병이 조국을 끝까지 지키려다 30여 분의 교전 끝에 전사하고 부상당하는 처절한 실전을 본 뒤라 지금도 전투장면이 눈에 선하다.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의 ‘어찌하여 그토록 위험이 예고되는 상황인데도 군의 최고 지도자는 5단계 교전 수칙을 지키라고 명령하여 아까운 젊은이들이 그토록 죽었단 말인가? 국가는 도대체 무얼 하는가?’ 라는 비통한 질문 아닌 자조적인 원망이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나 역시 울분을 삭이지 못하여 국가의 책임을 헌법에서 찾아보니 국가는 국민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하며 영토를 지킨다고 명기되어 있다. 왜 그러면 정부는 위험한 NLL(북방한계선) 선상에서 그토록 방관하고 5단계를 고수해야만 했는가? 의문이 가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에는 다분히 정치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의 소극적 꼼수가 있어 불쾌감을 안 가질 수가 없다.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북한의 이상 징조가 포착되었지만 357함에는 전달되지를 않았고 순시 임무는 하달되었다.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47분 참수리 357호의 27명 승조원들은 북한 경비정의 선제기습공격에 구급약, 붕대 몇 개에 의지한 채 피를 흘리며 응전했으며 조타장 한상국은 으스러진 자신의 손을 핸들에 묶어 운전하다가 결국 군함과 함께 침몰했다. 그런데 이미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전에서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이 있어 14분 만에 북한군을 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관은 문책인사를 받았고 3년 뒤 전혀 다른 대비책 없이 제2연평전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국토를 수호하는 군인들을 신뢰한다. 지금도 사랑하는 아들들은 고귀한 국방의무를 위해 용감히 입대하고 정한 기간을 마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군인임을 자부한다. 그런데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누가 국방을 지키며 목숨을 버리겠는가?
지금은 엄연히 자유민주 국가이다. 국가의 통치자를 위해 국민이 있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북한은 1953년 휴전 이후 1,100건의 도발을 자행하였다. 지금은 비록 3단계 전법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북한은 우리가 믿을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사건건 시비와 핑계로 저들의 유리한 시간을 벌고 있다. 영화의 본편 상영이 끝나고 12분간이나 긴 엔딩 크레디트에는 7천 명의 후원자들의 이름이 담겨있다.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7년이란 세월 속에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돈이 부족해 여러 번 중단되며 표류 된 적도 있었지만, 역사의 진실을 알리겠다는 제작진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남북이 사상적으로 갈라진 지 올해로 70년이 되지만 점점 심화되어가는 북한 지도자의 광분은 우리의 관계를 더욱 멀게 하고 그럴수록 북한의 2천5백만 동족들의 처참한 삶을 어찌 보고 있으란 말인가!
이제 우리 국민의 작은 바람은 다시금 연평해전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지도자는 철저한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와 국민을 가장 무서워하는 사상이 몸에 배 국민과 소통하고 어려운 곳을 찾아 인자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지도자를 기대하며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비전을 주며 희망을 보여주는 행동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임기 동안 치적을 내세우려고 강행한 지난날 4대강 사업의 말미는 푸른 녹조만 낙동강 보를 덮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 고(故) 윤영하 대위의 “온 국민과 함께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는 씩씩한 음성이 나의 눈시울을 다시 적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