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이하여 지난 18일 가톨릭신문 서울 본사 10층에서 이돈희(임마누엘) 노인의 날 만든 이/대한노인신문사 수석부사장 겸 수석논설위원, 장인홍(도미니코) 서울시의회 의원, 조해경(스텔라) 연세대 외래 교수, 양종구(요셉) 서울 여의도본당 시니어 아카데미 학장 등이 패널로 참석한 가운데 박지순 가톨릭신문 취재1팀장의 진행으로 ‘올바른 렌즈로 세상보기 - 노인 문제 좌담회’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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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14%를 넘어 한국은 고령사회로 진입했습니다. 한국의 노인 인구 비율 변화를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 UN은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합니다. 한국은 2025년에는 노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뒤 2065년에는 42.5% 즉 10,000명 중에 4,250명인 초초고령사회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2년 전인 2017년에 65세 이상 인구는 7,115천 명으로 전체인구의 14.2%를 차지해 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우리나라에서 제가 처음으로 노인의 날을 만들고, 행사를 하던 48년 전인 1971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약 2백만 명이었는데 46년 만에 무려 약 2.5배인 5백만 명이 증가하여 7,115천 명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공표한 것은, 제가 노인의 날을 처음 행사하면서 노인의 날 행사장에서 발표한 1971년의 [노인의 날 제정 취지문]에 나오며, 그 후 10년이 지난 1981년에 제정된 노인복지법에서도 이 65세를 노인의 기준으로 했으며, 지하철 무료, 사찰, 고궁, 목욕탕 등의 경로 할인 우대 등이 모두 이 65세를 기준으로 2019년인 지금까지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인간수명 곧 100세, 120세가 시대가 되므로 노인의 연령을 70세 또는 75세로 상향시키는 사회 인식과 국가적 정책이 필요합니다.
◆ 노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소외 계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생 전체에 있어서 노년의 삶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노년의 삶이 갖는 의미는, 이 지구상에 태어난 우리 인간으로서의 종장, 즉 마지막 무대라 생각합니다.
인간 전체를 유아청소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크게 3대(代) 단계로 분류하면, 노년은 인생의 마지막 결실의 단계, 숙성의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와 국가적으로도 이러한 각 단계를 대표해서, 유아청소년기의 어린이날, 장년기의 어버이날, 숙년기(孰年期)의 노인의 날이 있는 것입니다.
초등학생이 대학생을 세대 차가 난다고 무시해서는 안 되듯이 젊은 사람이 노인을 세대 차가 난다고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초등학생이 대학생이 되듯이 젊은이가 언젠가는 노인이 됩니다. 며느리가 항상 며느리인 것이 아니라 30∼40년 후면 시어머니나 장모가 됩니다. 노인은 절대로 당신과 무관한 분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은 아들, 딸, 며느리인 귀하가 바로 훗날의 노인입니다.
좌담회를 하고 있는 패널과 진행자(왼쪽부터 장인홍 서울시의회 의원, 이돈희 본지 수석부사장 겸 수석논설위원, 조해경 연세대 외래 교수, 양종구 서울 여의도본당 시니어 아카데미 학장, 박지순 가톨릭신문 취재1팀장). |
◆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가장 심각한 문제가 ‘노인 부양’에 대한 것입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노인이든 젊은 층이든 자식이 부모를 모신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한국 사회가 지금처럼 변화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보는 관점에 따라서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중3 때 세례를 받고서,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날, 대학생 때 노인의 날, 노인의 나이를 향해가는 68세 때 세계어버이날을 만든 저로서는, 한마디로 ‘효친경로사상의 실종’에 있다고 봅니다. 이를 부활시켜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인간이 모든 동물과 다른 단 하나의 마지막 보루는, 다른 모든 동물에게는 없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효친사상’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사상’이 있나 없나 여부입니다. 다른 어떠한 동물도 자기 새끼에게는 너무나 잘합니다. 이를 ‘내리사랑’이라 하며, ‘내리사랑’은 모든 동물에게 다 있지만 부모님과 노부모님께 효도, 부양하고 모시는 ‘치사랑’ 오직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영혼과 양심을 받은 사람이 ‘효친경로사상’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두 손 모아 기도한들 천국이나 극락을 가겠습니까?
자식과 부모와 배우자는 모두 가족으로서 보호할 대상이지, 결코 버릴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이면서 왜 가장 기본으로서 해야 될 일마저 팽개치고 살아가려 합니까? 그것이 흔히 내세우는 가난만의 탓입니까? 성격 차이 탓입니까? 자식이 불구인 탓입니까? 부모가 늙고 병든 탓입니까? 부모에게 효도하고 노인을 공경하고 이웃도 사랑하라 했습니다. 자식이, 부모가, 노인이, 시부모가, 장인·장모가, 배우자가 나만 못하다고 해서, 이웃만도 못한 존재입니까? 이 세상 나한 몸 편하게 살아가려는 개인주의로 살겠다고 다 버려도 되겠습니까?
◆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노인 부양을 개인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해결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맡아야 하는 책임은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시행돼야 할까요?
- 제가 약 30년 전인 1990년에 ‘노인마을 만들기에 일생을 건다’란 작품으로 ‘서기 2000년을 대비한 미래설계’ 현상공모에서, 2,853명의 응모자 가운데서 대상을 받은 귀중한 경험과 한국에서 처음으로 1972년에 한국노인문제연구소, 1976년에 한국노인학회를 만들고 연구해온 노인 문제 전문가, 노인학 전문가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맡아야 할 책임 중 하나는 노인마을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노인마을에는, 노인들이 살기에 좋은 각종 시설, 즉 노인전문병원, 성당, 교회, 사찰, 농장, 운동기구, 건전한 오락 시설, 산책로, 노인대학 등이 들어서야 합니다. 일어서고 앉기, 대소변 보기조차 힘드신 노인들을 위해, 직장을 가진 가족들의 부양은 한계가 있으므로 전문간호사와 봉사자들이 이들을 정성껏 돌봐드리게 합니다. 노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주 엄습하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성가·찬송가·찬불가·기도·독경 속에서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노인대학에서는 훌륭한 강사들을 모셔서 좋은 말씀을 들으시게 합니다. 수십만㎡도 좋지만 작게는 66천㎡(2만 평)∼99천㎡(3만 평) 정도라도 가능합니다. 날로 증가해가는 노인들을 위한 노인복지정책 차원의 일환으로 반드시 시행하여야 할 일입니다.
◆ 한국교회도 고령화 문제가 심각합니다. 주교회의 발표 자료를 보면 신자 고령화가 인구 고령화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노인 부양 부분에서 해야 하는데 못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한국교회 특히 천주교회는 평신도들의 고령화는 물론, 은퇴한 사제 수도자들로 초고령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돌보는 이 없고 자력으로는 화장실 출입조차 불가능하거나 아주 불편한 은퇴사제, 수도자, 나아가서 평신도들을 위해서라도 요양원을 교구 차원에서 각 교구마다 설립하여 운영하여야 합니다. 수원교구 내 수지에는 은퇴수녀님, 일반 할머니를 모시는 수지 성모요양원이 있습니다. 사목자들에게 노인사목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 복지국가라 불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는 ‘코 하우징(Co Housing)’ 노인 공동체가 있다고 합니다. 노인들이 각자의 집에서 살면서 식사와 취미생활 등은 공동으로 하는 마을을 만들어 사는 형태입니다. 한국 사회나 교회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노인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요양원에 가지 않고 노후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네요. 저는 앞서 말씀드린 노인마을을 국가나 지자체에서 건립하고, 그 시설의 일부를 할애해서, 마음 맞는 친지, 동기동창, 모임의 회원들이 각자의 집에 살면서 식사와 취미생활 등은 공동으로 하는 마을을 만들어 요양원에 가지 않고 살게 하는 것도 ‘코 하우징’ 노인 공동체를 실현하는 방안의 하나라고 봅니다. 노인이 한번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에 들어가면, 다시 자기가 살던 가정이나 집으로 돌아와서 인생을 마무리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이러한 노인 문제에 대해 먼저 관심을 가지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 박선형 기자
출처 : DB 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