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존경받는 독립운동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백야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일대기를 영화한 작품으로 임권택 감독이 1990년 연출한 작품이다. 임권택 감독의 88번째 작품으로 홍성유(洪性裕)가 쓴 《인생극장》(후일 영화와 동일하게 `장군의 아들'로 개칭)이 원작이다.
일제강점기 때 소년 김두한이 밑바닥 생활에서 부터 시작해 대한민국 주먹계를 평정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당시 신인이었던 박상민(김두한 분), 신현준(하야시 분), 김승우(쌍칼 분) 등이 출연해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주먹세계의 모습만이 아닌 일제시대 우리 국민들의 아픔도 잘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당시 현란한 액션과 임권택 감독만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고아였던 소년 김두한이 각설이 생활을 전전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극장 우미관에 취직한다. 어느 날 김두한은 우미관패의 우두머리 김기환을 만나러 온 망치를 때려눕히고 종로 주먹계에 입문했고 당시 학생 주먹패 대장 신마적은 김두한이 장군 김좌진의 아들임을 알고 뒤에서 그를 키워준다. 또한 일본 야쿠자 패거리 두목 하야시가 조선의 심장과도 같았던 종로에 진출하려 하자 김두한은 일본 주먹계에 맞서 끊임없이 결투를 벌인다. 이 장면들은 오랫동안 관객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흥행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는데 단성사에서 6개월간 상영되면서 서울에서만 60만 명을 동원했고 전국 관객 수 200만 명을 넘는 등 한국영화 100만 명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멀티플렉스가 아닌 단일극장 체재였기에 지금으로 따지면 1,000만 명 이상의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1991년 2편, 1992년 3편이 개봉됐고 모두 흥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1990년 11회 청룡영화상(신인남우상, 한국영화 최다관객상), 1991년 12회 청룡영화상(한국영화 최다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0년 11월 13일 소아마비 환자였던 중학생 이윤상 군이 납치된 사건으로 범인은 이윤상 군의 중학교 체육교사 주영형으로 밝혀져 더욱 충격을 준 사건이였다.
공부를 잘하던 이윤상 군이 실종된 건 1980년 11월 3일로 서울 공덕동 집에서 1.5km 떨어진 마포고 앞으로 체육담당 주 교사와 교외상담을 하러 나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 같은 날 오후 8시쯤 40대 남자 목소리로 “당신 아들을 수원에 감금했다. 우리는 전과자들로 4명이다. 일본으로 밀항하려는 데 돈이 필요하다. 현금 4천만 원을 준비하라. 경찰에 신고하면 당신 아들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협박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은 이 군의 신변안전을 위해 비밀수사를 벌였지만 사건발생 1백5일 만인 81년 2월 26일 공개수사에 들어갔고 가족들은 1천만 원의 현상금까지 내걸기도 했다.
공개수사 후 이 군이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전 국민들이 「윤상이 찾기 반상회」를 여는 등 국민적인 관심을 받은 사건이다. 또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5공화국 출범일인 3월 3일 이전까지 윤상 군을 부모 품으로 돌려보내면 선처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큰 관심을 가졌지만 1년 동안 이 군의 행적을 찾지 못했다.
사건의 실마리는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가 사건 발생 1년 만인 1981년 11월 30일 이 군이 다니던 중학교의 체육교사 주영형(朱永炯)이 범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인 주영형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대단한 엘리트였지만 여학생 제자들과 불륜을 벌이고, 도박 등으로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주영형은 이 군을 유괴 후 이불을 덮어 질식사 시키고 사체를 북한강 둔치에 암매장했다. 이 과정에서 불륜 관계에 있던 두 명의 여고생도 범행을 도운 혐의로 함께 구속되었다.
주영형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 상고 하였지만 대법원에서도 사형이 확정되어 1983년 7월 9일 사형이 집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