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라는 가난한 나라가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발전했다.
해외원조를 받던 나라는 해외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터로 나갔으며, 독일·중동으로 떠나 돈을 벌어왔다. 사회는 민주주의를 완성해 나갔다.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이룩하지 못한 쾌거이자 자랑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세대가 이룩한 자랑스러운 역사다. 돌이켜보면 시간이 참 유수와 같다.
그때 그 시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을까?
그때 그 시절을 찾아 떠나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 시절 우리의 가슴을 울리던 것들을 찾아 추억여행을 떠나보자.
1980년 10월 21일 방송을 시작해 2002년 12월 29일까지 22년 2개월간 방송된 MBC의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22년간총 1,088회가 방송되었고 우리나라 TV 드라마 중 최장수 방영 기록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 전원일기는 농촌을 배경으로 오랜기간 우리나라 사회상을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세대를 넘는 폭넓은 이야기가 매주 방영되어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산업화 이후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옮겨간 사람들에게 고향의 그리움과 농촌의 실상을 보여줌으로써, 농촌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드라마였다.
드라마 내용의 큰 줄기는 양촌리 김 회장 댁과 복길네 댁을 중심으로 마을 이웃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매주 옴니버스 식으로 방송되었다.
양촌리의 유지인 김 회장 역에는 국민배우로 불리는 최불암 씨가 역을 맡았으며, 김 회장의 부인 역에는 김혜자 씨가 역할을 맡았다. 두 사람의 연기가 너무 훌륭해 실제 부부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김 회장 어머니 역에 정애란, 큰아들역에 김용건, 큰 며느리 역에 고두심, 둘째 아들 역에 유인촌, 둘째 며느리 역에 박순천 등이 열연했고, 복길네에는 일용엄니 역에 김수미, 이일용 역에 박은수, 일영 처 역에 김혜정 등이 출연해 큰 사람을 받았다. 그 외에도 이수나, 이숙, 박윤배 등이 오랜기간 연기를 선보였다. 복길 역을 맡은 김지영과 영남 역을 맡은 남성진은 실제로 결혼해 부부가 되기도 했다.
오랜기간 방송되다 보니 소재 고갈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1996년 11월 3일부터는 극 중 시간을 5년 정도 흐르게 해 드라마의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이때부터 성장한 3세(영남, 수남, 복길, 순길, 보배, 노마) 등도 극의 중심이 되었고, 성장한 3세들에 새로운 배우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전원일기는 1983년 제10회 한국방송대상 드라마 부문 TV극본상, 1985년 제2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작품상, 1986년 MBC 연기대상 대상 김수미 등이 수상했다.
1941년 10월 30일 서울에서 태어난 이미자는 문성여자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1958년 TV노래자랑 프로그램 KBS 《노래의 꽃다발》에 출연해 1등을 수상했다. 그리고 1년 뒤 `열아홉 순정'이라는 곡으로 데뷔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1964년에 발표한 `동백아가씨'는 35주 연속 가요 순위 1위를 차지했고, 25만 장이란 엄청난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자의 노래는 일본 엔카와 비슷한 창법과 분위기로 인해 왜색조라는 이유로 방송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 발표한 `섬마을 선생님'과 `기러기 아빠'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방송금지곡이 되었고 음반제작과 판매가 금지되는 등 시련을 겪었지만 그녀의 타고난 목소리와 가창력은 이런 시련도 이겨낼 정도로 훌륭했기에 그 후에도 2,000여 개가 넘는 곡을 선보였고 이중에도 상당히 많은 히트곡들을 선보였다.
대표적인 히트곡으로는 `열아홉 순정 1959년', `동백아가씨1964년', `지평선은 말이 없다 1966년', `섬마을 선생님 1967년', `빙점 1967년', `서울이여 안녕 1968년', `기러기 아빠 1969년', `아씨 1970년' 등 400여 곡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에는 미국 뉴저지 등에서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고, 가수생활 30년을 기념하여 [노래는 나의 인생](박춘석)을 발표,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기념 30주년 공연을 개최했다.
1999년에는 가수 데뷔 40주년 기념 음반 발표와 함께 자전 수필집 《인생, 나의 40년》을 출간했으며 2002년에는 평양에서 남북 동시에 텔레비전 생중계로 특별공연을 열기도 하였다. 1995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과 함께 화관문화훈장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가수왕 3회, MBC 10대가수상 10회를 받았다. 2004년에는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민족문학작가회의 우정상을 받기도 하였다. 트로트의 여왕,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린다.
8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공연 활동으로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있다.
건국 이후 가장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인 지존파 살인사건은 당시 온 국민을 충격으로 빠뜨렸다.
1993년 4월부터 1994년 9월까지 5명을 살인한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은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품은 범인 김기환과 학교 후배 강동은, 교도소 동기 문상록 등이 벌인 사건이다.
이들은 현실사회에 대해 불만을 품은 자들로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에서 결성됐다. 이들은 1993년 7월 충청남도 논산에서 최 모 양(23세)을 윤간한 후 살해 암매장 했고, 같은 해 8월 조직원이던 송봉우도 살해 암매장했다.
이들은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의 지하실 아지트에 창살감옥과 사체를 은닉하기 위한 사체 소각시설을 갖추는 등 충격스러운 일을 벌이기도 했다.
이어 1994년 9월 이종원-이 모 씨, 소윤오-박미자 부부를 납치 감금하였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이 모 여인을 제외한 3명을 모두 살해하고 사체를 토막내어 소각하는 등 9월 15일까지 4차례에 걸쳐 엽기적인 연쇄 살인행각을 벌였다.
이 사건은 이들을 납치되었다가 탈출한 이 모 여인의 신고로 9월 19일 검거되었다. 재판 결과 검거되기 이틀 전에 조직에 가담한 이경숙을 제외한 두목 김기환을 비롯하여 강동은, 김현양, 문상록, 강문섭, 백병옥은 사형을 선고받아 11월 2일 사형이 집행됐다.
어려운 형편 속에 어린시절을 보낸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오렌지족, 야타족 등을 증오해 부유층을 대상으로 살인을 계획하였지만 정작 부유층이 아닌 대부분 서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충청남도 논산에서 윤간 후 살해된 첫 번째 피해자인 23세 여성은 집도 가난했고, 아버지 병 치료를 위해 어린 나이에 공장을 다니는 불쌍한 여성이었으며, 경기도 양평군에서 납치되어 살해된 이종원은 야간업소 밴드 마스터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경기도 성남에서 납치되어 살해된 소윤오 부부는 자수성가로 울산 온산공단에서 건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했으며, 빚을 내어 인수한 공장 문제로 인해 회사를 살리려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