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 광복회, 독립기념관에서 2023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강윤국, 유만수 지사를 선정해 나라사랑정신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 강윤국
서울 사람이다.
1943년 5월 일본 천기(川岐)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취업 중이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제의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에 분개하여 농성 시위를 주도하는 등의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45년 5월 조문기(趙文起)·유만수(柳萬秀)·우동학(禹東學)·권 준(權俊) 등과 함께 서울 관수동 130번지 유만수의 집에서 비밀결사인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동년 7월 24일 서울 부민관에서 조선 총독, 조선군 사령관, 친일파의 거두 박춘금(朴春琴) 등이 참여하는 소위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가 박춘금의 주최로 개최된다는 소식이 신문지상을 통해 보도되었다.
그는 이 기회에 일제 침략자와 친일 민족 반역자를 처단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조문기·유만수 등과 함께 수차에 걸쳐 비밀회합을 갖고 폭탄장치 등 거사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하여 7월 24일 저녁 친일매국대회가 개최되는 곳에 장치해 둔 2개의 폭탄을 터뜨려 요란한 폭음을 내며 폭발하여 대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리하여 소위 아세아민족분격대회는 이들의 거사로 인해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으며 이 거사는 일제 말기 한민족의 민족적 의열투쟁의 대미(大尾)를 장식한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 유만수
경기 안성(安城) 사람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1943년 5월 일본 천기(川崎)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취업 중인 한국인 노무자들이 궐기하여 민족차별에 반대하는 농성 시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후 동회사에 강제 수용되어 생활하다가 회사를 탈출하여 일본 내의 노무자 단체를 전전하면서 일본으로 강제 징용되어 온 동포의 구출 활동을 한 후 귀국하여 1945년 5월 동지 강윤국(康潤國)·조문기(趙文紀) 등과 함께 총독부 고관과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하여 대한애국청년당을 비밀리에 조직하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1945년 7월 24일 친일의 거두인 일본 중의원 의원 박춘금이 소위 대의당(大義黨)이란 정당을 조직하고 내선일체(內鮮一體)와 조선인의 황민화(皇民化)를 부르짖으면서 서울 부민관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는 동지 3인과 다이너마이트로 폭탄 2개를 만들어 몰래 대회장에 들어가 연단과 복도에 장치하여 폭발시킴으로써 대회장을 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방병건 회장 (독립유공애국지사유족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