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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논설위원 (부산시노인복지단체연합회장) |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유수(流水)와 같다는 옛말이 틀린 것 같지를 않아 나이가 들면서 더 빠름을 느끼며, 가는 세월이 너무 아쉽다는 안타까움에서 돌아보니 남은 세월이 얼마 남지를 않았다. 성경은 말하기를 인생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하지만 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은 나이에 나도 합류하는 노인이 되어간다. 각 복지관에서 노인들이 말하는 9988234의 인생을 희망으로 노래하지만 누가 알 수 있으랴, 언제 불려 갈지는 순서가 없으니, 하나님이 오라 하면 가야 하는 인생이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의 노래처럼 인생 소풍이 끝나면 석양에 지는 노을처럼 남기고 가야 하는 우리의 인생 여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마무리를 잘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12월 3일 선택에 의한 분신 즉 소신공양으로 칠장사 화재로 입적하신 ‘자승’ 큰 스님의 마지막 글귀에서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 열반 송을 남기었다고 전하나… 과연 인생의 마지막을 이렇게 가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늘도 요양원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23만여 명의 노인 환자들을 보면서 오래 사는 것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재가(在家)에서 보호받는 58만여 명 노인 환자들 중에서 노(老)·노(老) 케어로 어렵게 삶을 살아가는 가정들이 많다. 늙은 부모는 90이 넘어서 거동이 불편하여 3끼 밥 수발을 70대 노인이 하고 있으니, 본인도 건강이 좋지 않아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이런 신세를 한탄하고, 또한 일부 가정에서는 40대 자식이 직장을 못 구하고, 결혼도 아니 하고, 집안에서 세끼 밥만 축내고 은둔하는 청년 백수가 47만여 명이나 되는 대한민국에서 노인의 삶의 질은 점점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 한 언론조사기관에서 한국과 일본 노인들을 중심으로 100세까지 살고 싶나요? 물으니 한국 노인은 50.1%가 그렇다고 답하고, 일본 노인은 22.0%가 답했다. 왜 오래 살고 싶으냐고? 물으니 31.9%가 조금이라도 더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답한다. 과연 남은 인생이 노인 의사대로 더 즐긴 인생으로 환경이 만들어질까? 궁금해진다. 반면에 100세까지 살기 싫은 이유를 물으니? 49.8%가 가족이나 주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으냐? 물으니 59%가 어느 날 갑자기 심장병 등으로 돌연사를 원한다고 답을 한다. 오랜 병상에서 누워있는 현상들을 보면서 그 노인들의 심정을 충분히 반영하는 의미를 조사에서 담고 있다.
결국 장수(長壽)가 축복이 아니고 오히려 인생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며, 오래 살면서 이웃이나 가족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직감하는 조사의 결론이다.
노인이 되면 누구나 찾아오는 4고(苦), 즉 빈곤, 질병, 고독, 무위(無爲)의 고통을 오래 살면서 가질 필요성은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동조하는 현대인들이 점차 늘어나는 현상이다. 이웃 일본은 노인인구가 30%를 넘어서면서 ‘간병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 2017년 일본에선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일본 NHK가 방영한 간병 살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오랜 간병에 지친 가족에 의한 간병 살인이 연간 40여 건 발생으로, 사회적 큰 문제로 번져나가는 실태이다. 일본은 2000년도부터 개호(介護)보험제도(돌봄, 간병)를 도입하여, 고령자의 간병을 사회 전체가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간병비 부담이 4배로 증가하면서 돌봄 급증에 따른 인력확보에 고심하는 현실이다.
오랜 간병은 경제적 파탄으로 이어지고 간병인을 고용하는데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경우 간병비가 월 400만 원까지 든다. 우리나라는 내년에 초고령사회 즉 노인인구가 20%를 넘어 전체 노인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 시대로 접어들고, 2060년대는 45%를 넘어 세계 1위의 노인천국의 나라가 된다. 심히 걱정되는 미래를 보면서, 새해 갑진년을 맞아 9988234를 소원하는 우리 노인들은 자기 건강을 스스로 지켜 자녀들에게 부담 주는 늙은이가 되지 말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