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56세로 60세에도 못 미쳤다고 한다. 그러므로 70세까지 장수한 분들을 보기 드물었다는 뜻이 인간칠십고래희(人間七十古來稀)이다. 60세의 회갑(回甲)과 70세의 고희(古稀) 잔치를 베풀어 건강 장수를 축하하였다.
100세 시대의 지금 70은 대부분 중년의 삶을 산다. 나 역시 부모님의 유전자를 받아 80세를 넘겨도 특별한 건강의 이상은 없지만 늙어 감에 대한 아쉬움은 참으로 많다. ‘만고 영웅 좋다 한들 백발 중에 영웅 없소. 절대가인(絶代佳人) 좋다 해도 백발 중에 인물 없소. 백발 올 줄 알았다면 문 닫아 꼭꼭 잠그고 깊이깊이 숨어 앉아 사람 없다 속여 볼 걸…’(작사 미상의 ‘노인가’의 한 소절)
1년 전 만 해도 큰소리 떵떵 치던 81세의 나와 동갑내기 고향 친구가 타계했다는 부고(訃告)에 가슴이 멍해졌다. 보름 전 그 친구가 노인복지사업을 하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나는 그의 부탁을 해결하기 위하여 백방(百方)으로 알아봤지만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 친구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6개월 요양으로 건강이 다소 회복되어 퇴원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달라는 당부였지만 나의 능력으로는 그 친구의 간망(懇望)을 들어주지 못했다. 그 친구는 80여 평생 살아온 고향 집에 가지 못하고 객지의 요양병원에서 저승으로 가고 말았다.
얼마 전 네이버 검색 중 노인요양원과 노인요양병원으로 부모님을 보내는 것이 현대판 고려장이며 노인요양시설에 입원하는 순간 가족들과는 이승에서 이별하고 바로 저승 대기소인 그곳에서 저승길 대기자로 전락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노인을 버린다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어느 집에서 70세가 된 늙은 아버지를 그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속에 내다 버리려고 지게를 버리고 막 돌아서려 할 때, 따라왔던 그의 아들이 지게를 다시 가져가려고 하니 그의 아버지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었더니, “아버지가 늙어 70세가 되면 이 지게로 다시 져다 버리려고요”라고 대답하여 그 말에 아버지는 뉘우치고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 가서 효도를 다하였는데, 이로부터 이 악습은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자식의 거울인 부모의 언행이 실로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인 우리의 효 사상과 어른을 공경하는 경로사상(敬老思想)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효가 있는 가정 경로하는 사회’를 위한 운동으로 조손교실(祖孫敎室) 운영과 노인과 가족합동운동회, 노인대학 졸업식과 노인대학생들의 솜씨 자랑인 학예 발표회에 자녀들과 손자녀들의 참여로 경로효친운동을 50여 년 추진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다.
얼마 전 105세의 김형석 교수님이 모 대학 특강에서 20대의 대학청년들을 향해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해 지금 고민하지 않으면, 평생 타인의 인생을 보거나 타인의 인생을 좇으며 살게 될 것”이라 하셨다고 한다.
또한 “50∼60대가 되어 어떤 분야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 것인지 고민하라”고 권면(勸勉)했다고 한다. 김형석 교수님은 “사람은 아는 만큼 일할 수 있고, 인격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인간관계를 통해 인격을 키우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학문을 탐구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노인의 고독한 심리는 첫째로 가부장적인 역할상실과 노쇠에 따른 심정의 약화이며, 둘째로 배우자와 친지 등과의 사별에서 오는 슬픔과 고립감이며, 셋째로는 죽음을 앞두고 느끼는 두려움과 인생의 허무감 등이라고 한다. 아무리 평균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아무것도 못 하고 육체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 노인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정말 비참한 것인데, 어쩌면 몇 년 후에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아 심란(心亂)한 마음이 든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노인은 인간발달 단계로 볼 때 죽음을 가장 가까이 접하고 있는데, 죽음에 대한 태도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복합적일 수 있다. 노인이 죽음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면 삶의 질이 좋아지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한다. 죽음 준비 교육의 참여는 물론 추하지 않은 노인, 건강하고 떳떳한 노후를 위한 알뜰한 삶이 필요할 것 같다.